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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가정 균형 위해 다만 10분이라도 나만의 시간 즐겨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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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호 17면

미국 초대형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의 패션쇼를 본 적이 있는지. 아찔한 란제리 차림의 모델들이 캣워크에 나선 광경은 남녀를 불문하고 눈을 떼기가 쉽지 않다. 특히 섹시한 디자인과 과감한 색상으로 승부하는 브랜드의 특성상 모델들은 하나같이 세계 최고의 몸매를 자랑한다. 호주 출신의 모델 미란다 커(Miranda Kerr·29)는 그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존재다. ‘신이 내린 황금비율’이라는 몸매 덕에 그가 런웨이에 등장하면 가장 많은 환호성과 플래시 세례가 터져나온다. 2007년 빅토리아 패션쇼에 데뷔한 그는 이제 각종 잡지 표지와 패션 브랜드 화보를 장식하는 초특급 스타다. 로맨스 역시 스타의 길로 들어서는 데 한몫했다. 2010년 할리우드 대표 미남 배우 올랜도 블룸과의 결혼으로 할리우드 여배우 못잖은 화제를 낳았다. 이후 임신 6개월에 패션지 보그의 표지에 등장하고, 출산 두 달 전 파리 패션위크 무대에 서면서 미란다 커라는 이름은 대중의 머릿속에 확실히 박혔다. 이제 모델로서, 엄마로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는 어떤 모습일까. 10일 한국에 들른 미란다 커로부터 그 답을 들어봤다.

코스모폴리탄’ 한국판 표지 촬영한 톱모델 미란다 커

신이 내린 몸매…”지난해 얻은 아들이 가장 중요한 존재”
미란다 커의 방한 일정은 빠듯했다. 오전 11시에 도착해 자정에 다시 비행기를 타는 스케줄. 모델로 활동 중인 핸드백 브랜드 ‘사만사 타바사’의 매장 행사와 인터뷰를 끝내고 코스모폴리탄 한국판의 화보촬영까지 해야했다. 화보팀은 그가 지친 몸으로 과연 주어진 세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을지 내심 걱정했다. 하지만 미란다 커와 평소 자주 작업하는 스타일리스트,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등은 태연했다. 촬영 속도가 매우 빠른 ‘프로’라고 했다.

그 말은 맞았다. 그는 옷을 건네주면 순식간에 갈아입고, 촬영이 시작되면 바로 몰입했다. 출산 전보다 더 완벽한 몸매를 뽐냈고, 중간중간 농담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 옷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촬영한 컷에 대해서도 분명히 의견을 말했다. 하나 더. 촬영 내내 결혼반지를 빼지 않기를 원했다. 일하는 순간에도 자신이 누군가의 아내이고, 한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는 듯.

“엄마가 됐다고 부담을 느낀다거나 그런 건 없어요. 그저 엄마로서, 모델로서 그때그때 순간순간을 즐기려 하죠. 변화라면 글쎄… 아이를 낳고 난 뒤 다시 활동을 재기해야겠구나 느꼈을 때 걷기·요가 같은 회복 운동을 시작했어요. 예전에도 하던 운동인데 효과가 더 컸죠. 정신이 더 맑아졌고, 에너지가 더 커졌어요.”
하지만 그는 이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최고로 삼는 것은 아들 플린이라고 했다. 아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일에 대해 신중해진다는 것. “어떤 일을 할지, 어디서 일할지에 대해서도 먼저 가족을 생각하고 선택하게 됐죠.” 그는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잡으려면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그게 그저 10~15분의 명상이나 심호흡일지라도 말이다. 그런 시간을 가져야만 가족, 회사 동료, 심지어 나 자신에게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준비를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13세 데뷔…”다이어트? 80%는 건강하게, 20%는 맘대로 먹죠”
미란다 커가 모델계에 발을 들인 건 겨우 열세 살 나이였다. 1997년 ‘돌리’라는 한 호주 잡지사가 주최하는 모델 콘테스트에 참가하면서다. 데뷔 초기에는 수영복 모델로 자주 나와 일부에선 ‘아동 포르노’라는 비난도 들었지만 그의 반응은 당당했다. “‘돌리’는 청소년용이지 삼촌들을 위한 잡지다. 그리고 나는 옷을 입었다”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학업과 모델 일을 병행하던 그는 졸업 뒤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하고 본격적으로 모델 일을 시작했다. 이후 빌라봉·록시 등 모델을 거쳐 2004년 뉴욕에 둥지를 틀었다. 이때부터 바자·보그·엘르 등 세계 최고 패션지와 함께 작업했고, 리바이스·리퍼블리카 등 의류 브랜드의 모델로 영역을 차츰 넓혀 나갔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모델이 된 건 2006년. ‘프로젝트 런웨이’의 마지막 무대에서 빛을 발한 직후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하이디 클룸, 지젤 번천 같은 대형 모델들을 만난 게 당시에는 얼떨떨할 뿐이었다”고 회고했다.

인기 수직 상승 곡선을 달리던 그는 2008·2010년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10대 최고 소득 모델’에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담담했다. 처음 모델이 되던 때부터 지켜오고 있는 원칙 때문이었다. “모델 일을 하게 되면 붕 뜨게 되는 판타지 같은 일이 많아지죠. 그 안에서 현실감각을 잃지 않고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남들과 똑같이 본다”고 했다. 실제 그간 다수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몸매에 대한 찬사를 부담스러워 했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카탈로그가 누군가의 자존감을 건드릴 이유는 없다고 봐요. 해바라기가 결코 장미가 될 수 없다고 하지만 장미 역시 해바라기가 될 수 없잖아요. 둘 다 아름다운 꽃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인데 말이죠. 여자들도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해요.” 이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보통 여자들에겐 얄미운 말로 들릴 수밖에 없을 터. 오죽하면 그의 몸매를 닮고 싶은 여성들 사이에서 닭가슴살·요거트·연어샐러드 등으로 구성된 ‘미란다 커 식단’이 화제를 뿌렸을까. “따뜻한 물과 레몬을 매일 아침마다 마시고, 오가닉 음식을 즐겨 먹죠. 실제 다이어트라기보다는 80/20원칙을 적용해요. 80%는 건강하게, 20%는 하고 싶은 대로 먹는 것이죠. 음식은 적이 아니라 친구니까요. 단것이 당길 때도 물론 있어요. 그러면 저한테 특별한 상을 주듯 다크 초콜릿과 다크 초콜릿으로 덮인 산딸기를 먹죠. 하지만 한국에 올 땐 불고기를 먹고 싶더라고요!”

한번 올라가면 내려올 일만 남은 것이 스타의 숙명이다. 전성기를 맞고 있는 미란다 커도 피할 수 없는 일. 그래서 다소 이를 수 있는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져봤다. 모델, 그 이후의 삶을 생각하고 있는지였다. 그는 자신의 화장품 사업을 언급했다. 모델 일을 하며 마음에 드는 화장품이 별로 없어 직접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이제 막 전 세계로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고도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최고의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고, 아들 플린이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 저의 최고 목표랍니다.”
사진 코스모폴리탄, 사만사 타바사, 게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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