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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쓰고 싶어도…" 마리나 간 요트족 '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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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20일 빈 자리가 없이 요트가 빼곡히 채워진 경기도 화성시의 전곡항 마리나. 계류장 사용 희망자는 많은데 공간은 부족해 추첨으로 사용자를 뽑았다. [박종근 기자]

지난 20일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의 마리나. 145척을 댈 수 있는 계류장은 요트로 가득 찼다. 수천만원에서 최고 18억원짜리도 있다. 요트 열기 확산으로 두 개뿐이던 라인을 지난해 말 세 개 더 늘렸다. 하지만 부쩍 늘어난 요트족(族)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화성도시공사 김동식 마리나관리사무소장은 “사용 희망자가 많아 증설된 3개 라인은 추첨을 통해 배정했다”고 말했다. 매년 봄 국제 요트쇼를 개최해 마리나의 선도주자로 떠오른 전곡항이 아직 이런 수준이다. 쓸 돈이 있는 고소득층이 열고 싶어도 지갑을 못 연다는 얘기다. 그러니 해외로 나간다.

 마리나는 선진국형 서비스업의 하나다. ‘여가 중시’ ‘저녁이 있는 삶’이란 시대 흐름에 부합하고 선박 제조, 정비사 고용, 배후 리조트 건설 등 다단계로 내수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특히 삼면이 바다인 한국에 유리한 산업이라 소비 증진책을 거론할 때마다 감초처럼 등장했다.

 문제는 빈약한 밑천이다. 부산 수영만·경남 충무 등 국내 14개 마리나의 수용 능력은 전체 요트·보트 등록대수(약 7000척)의 17%에 그친다. 정부도 마리나의 잠재력을 알고 있다. 2009년엔 “전국 10개 지역에 44개 마리나를 짓겠다”고 의욕을 냈다. 하지만 민간의 사업 제안은 지금껏 두 개에 그쳤다. 지난해 12월엔 국토해양부가 마리나 종합 육성책을 다시 내놓고 ▶요트 문화 확산(면허 취득 간소화, 체험 프로그램 확대) ▶민간 투자 활성화(마리나 내 주택 분양 가능) ▶요트 정비업 육성 등에 나서겠다고 했다. 오운열 국토부 해양정책과장은 “부자 지출 확대로 중산·서민층 일자리와 소득을 늘리기 위해 마리나 수요층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욕만 앞선 정부와 달리 현장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우선 저변 확대를 위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영환 요트닷컴 대표는 “렌털 사업이 활성화하면 중산층도 얼마든지 요트 레저에 지갑을 열 수 있는데 초기 투자비가 많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정부가 홍보 등 지원을 강화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둘째, 복합리조트 조성이다. 달랑 요트 장만으론 경쟁력이 없다. 쇼핑시설·식당가 등이 어우러진 ‘복합리조트’라야 소비 진작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전곡항의 경우 현재 건축 중인 3층짜리 클럽하우스를 빼면 주변은 썰렁하다. 복합 휴양지의 모범 사례는 1950년대부터 개발된 미국 로스앤젤레스 서부 해안의 ‘마리나 델 레이’ 주변이다. 요트 5300여 척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다. 북쪽 7㎞ 위엔 샌타모니카 해변과 ‘3가 프로미네이드’라는 유명 쇼핑몰·레스토랑 거리가 있다. 국제공항도 지척이다. 시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이 지역을 찾은 관광객은 670만 명에 달했다. 다른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2009년 이후 금융위기 후유증에 고전했지만 복합 인프라 덕에 금세 부진을 만회했다.

 가장 큰 성공요인은 중산층까지 주 고객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2011년 이들이 뿌린 돈은 14억 달러(약 15조원)로 역대 최고였다. 전문가들은 “부자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요트 소비족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며 “요트 레저를 사치품으로 배척하는 세간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홍장원 해양수산개발원 박사는 “선진국 마리나에 비하면 한국은 이제 시작 단계”라며 “단기간에 모든 사람이 배를 사기는 쉽지 않은 만큼 콘도처럼 여러 사람이 지분을 사서 돌려 쓰는 클럽제 같은 걸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서경호(팀장)·최지영·김영훈·김준술·장정훈·한애란·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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