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탐험] (33) - 마지막 부속품

중앙일보

입력

1975년의 시즌을 앞둔 신시내티 레즈 스파키 앤더슨 감독의 고민은 단 한가지 '도대체 3루를 누구에게 맡겨야 하나'라는 문제였다.

포수(자니 벤치) · 1루수(토니 페레즈) · 2루수(조 모건) · 유격수(데이브 컨셉시언) · 외야수(피트 로즈 · 켄 그리피 · 조지 포스터 · 데이브 컨셉시언) 모두 최고의 선수들을 집결시켰지만, 3루수의 적임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전년도에 앤더슨은 신인 댄 드리센에게 3루를 맡겼다. 드리센은 선배들과 어울릴 수 있는 수준급의 공격력을 자랑했지만, 수비가 형편없어 탈락. 앤더슨은 밥 하우섬 단장에게 찾아가 뉴욕 양키스의 크레그 네틀스를 데려와달라고 요청했다. 하우섬은 토니 페레즈라는 카드를 들고 양키스를 찾아갔지만, 양키스가 그들의 '떠오르는 스타'를 내줄리 만무했다.

결국 앤더슨은 드리센을 보조했던 수비형 3루수 존 보코비치로 시즌을 시작했다. '물방망이' 보코비치에 만족할 수 없었던 '후크 선장'은 이후 대럴 챈시, 덕 플린도 기용해봤지만, 이들은 마치 작당이라도 한 듯이 형편없는 스윙을 해댔다.

실제로 5월 3일까지 레즈가 치뤘던 24경기에서 이 세명의 3루수가 거둔 성적표은 70타수 10안타(타율 .143) 3타점 6득점이었다. 홈런은 하나도 없었으며, 2루타는 3개가 고작이었던 반면, 삼진은 11개를 당했다. 경기가 끝나고 앤더슨 감독은 피트 로즈를 불렀다.

"자네 3루수 할 수 있겠나?"

허슬플레이의 대명사이자 야구에 관한 열정 하나는 누구도 부럽지 않았던 로즈가 이를 마다할리 없었다. 그날 밤 '찰리 허슬'은 조지 셰거 코치로부터 밤새 3루 펑고를 받아냈다.

로즈는 3루수로서 뛰어난 수비를 보이지는 못했지만, 합격선은 충분히 넘어섰다. 당초 우려됐던 공격력의 저하도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앤더슨 감독은 마음 편히 켄 그리피 · 조지 포스터 · 데이브 컨셉시언의 외야 라인을 구성할 수 있었다.

로즈의 3루수 데뷔전이었던 4일 경기에서 레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7-6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이 경기를 시작으로 레즈는 거침없는 연승행진을 내달렸다. LA 다저스에 5.5경기로 뒤져 있던 레즈는 결국 다저스를 12.5경기 뒤로 밀어내고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월드시리즈에서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명승부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결국 로즈의 3루수 전환은 '빅 레드 머신'이란 가공할만한 기관총의 마지막 부속품이었던 셈.

1963년 2루수로 빅리그에 데뷔한 로즈는 72년 조 모건이 합류한 후 외야수로 전향했고,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옮겨서는 1루수를 맡아봤다. 로즈는 아직도 각기 다른 다섯 포지션에서 500경기 이상을 출전한 유일한 선수로 남아있다.

※ 시간 탐험 홈으로 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