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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강은 내 건축의 원천 옛집에서 나온 자재도 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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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왕수가 설계한 중국 저장성(浙江省) 항저우의 중국미술학원 샹산(象山)캠퍼스. 학교 부지에 있는 산과 호수를 그대로 살려 건물을 배치했다. 철거한 전통 가옥에서 나온 기와와 벽돌 700만 장으로 건물 벽을 세우고 지붕을 덮었다. [사진 프리츠커상 홈페이지]

“서울에는 산이 많은데, 높이 솟은 고층빌딩이 산을 모두 가리고 있더군요. 이런 모습은 현대화가 아니라 문화의 쇠퇴라고 생각합니다. 풍경이 아니라 풍경을 가린 건축물만 보이는 도시는, 기본적인 미의 관념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자연과 전통을 붙들고 살아온 건축가의 눈에 비친 서울은 꽤나 삭막했던 모양이다. 올해 중국인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중국 건축가 왕수(王樹·49)는 서울의 첫 인상을 묻는 질문에 매서운 비판부터 쏟아냈다.

 그는 20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열리는 제12회 김옥길 기념강좌 ‘건축의 지역성을 다시 생각한다’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 한국을 찾았다. “서울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서구화된 건축물로 넘쳐난다. 옛 풍경이나 아름다움, 조화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인간보다 자연이다

왕수

왕수의 건축은 고집스럽게 자연과의 조화, 전통의 계승을 추구해 왔다. 1963년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에서 태어난 그는 난징(南京)공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10여 년간 중국 전통건축의 장인들을 만나 기술을 전수받았다. 이후 저장성(浙江省) 의 항저우(杭州)를 기반 삼아 부인 루웬유와 ‘아마추어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상하이 통즈(同志)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교에서 대학 교수를 제의했지만 “상하이는 중국이 아닌 것 같다. 항저우로 돌아가야 중국을 찾을 수 있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대도시가 아닌 항저우에서 활동하는 이유에 대해 “항저우는 중국 예술의 본고장이다. 시내에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데 여기 앉아 산을 바라보면 구름이 조용히 흘러간다. 그 풍경을 보며 이곳에서 건축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답했다.

 그의 아이디어도 자연에서 나온다. 대표작인 닝보(寧波) 역사박물관을 설계할 때는, 옛 중국의 산수화가들처럼 자연을 바라보며 일주일간 사색을 했다. 항저우의 중국미술학원 샹산(象山)캠퍼스를 지을 때도 ‘주변 자연경관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학교부지 중간에 50m 높이의 작은 산이 있었는데, 이 산을 있는 그대로 보호하면서 설계했습니다. 캠퍼스가 완성되고 나서 볼품없다, 중국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건축운동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받았죠.”

 ◆토종 비주류 건축가

중국에서 태어나 공부한 ‘토종 건축가’ 왕수의 프리츠커상 수상은 세계 건축계에 충격을 안겼다. 하지만 막상 중국 내에서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그는 “프리츠커상을 받았을 때, 중국 건축가협회에서 아무 반응이 없었다. 어떤 지역의 건축가협회는 왕수의 수상을 축하해야 하나를 두고 토론까지 벌였다고 하더라”며 “나는 중국에서 매우 특별한, 독립된 건축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간 일본 건축가들이 프리츠커상을 여러 번 받았지만, 그들(일본 건축가들)은 스스로를 유럽인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구미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건축가로서는 내가 처음으로 수상했다고 볼 수 있다”며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중국 전역에 부는 개발 열풍으로 중국 전통 건축물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해체된 전통가옥에서 나온 자재들을 재활용해 집을 지어왔다. 2006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는 6만6000개의 재활용 타일로 이뤄진 설치작품 ‘타일드 가든(Tiled Garden)을 선보였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건축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그는 동아시아의 건축가들이 전통과 자신들만의 가치를 지키는 데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동아시아에서는 고층건물을 높이 평가하지만, 서양에서는 오히려 그만하자는 분위기입니다. 제가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것도 세계 건축계의 이런 변화를 반영한 것이죠. 전통을 파괴하고 건물만 높이 올리는 건 우리의 미래를 파괴하는 행위이자, 남들이 버린 것을 줍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al Prize)

매해 인류와 환경에 중요한 공헌을 한 건축가에게 주는 상. 건축 분야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힌다. 하얏트호텔 체인을 소유한 하얏트재단 전 회장 제이 A 프리츠커(1922~99) 부부가 1979년 제정했다. 오스카 니마이어·프랭크 O 게리·알바로 시자·페터 줌토르·렘 쿨하스 등 세계 유명 건축가가 이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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