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보수 보증금 '사기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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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택의 하자를 보수하는 건설업자들의 비리를 눈감아 주고 돈을 받아 챙긴 공동주택 입주자 대표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8일 있지도 않은 공사를 한 것처럼 속이거나 공사비를 부풀리는 수법 등으로 빌라나 다세대 주택 등 공동주택의 하자보수 보증금을 타낸 혐의(사기)로 건설업체 S사 대표 전모(34)씨를 구속하고, 김모(39)씨 등 건설업자 1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들 건설업자와 짜고 하자보수에 동의해준 뒤 돈을 챙긴 입주자 대표 28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전씨 등 하자보수 업자들은 2002년 1월부터 올 4월까지 서울.경기.인천 지역에서 소규모 빌라와 다세대 주택 등 공동주택 2054곳에 대한 하자보수 보증금 185억원을 받아 이 중 83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입주자 대표들은 건물 상태가 멀쩡한데도 건설업자의 하자보수 공사에 동의해 주고 보증금을 타낸 뒤 1인당 500만~1500만원씩 챙겼다는 것이다.

구속된 전씨의 경우 경기도 안산의 한 빌라 하자보수비로 1200여만원의 견적서를 작성해 보증금 900여만원을 받아내는 등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148차례에 걸쳐 16억원의 견적서를 위조해 보증금을 타냈다.

건설업자들이 하자보증금을 '눈먼 돈'처럼 챙길 수 있었던 것은 입주자 대표들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건설업자와 입주자 대표들은 신축한 뒤 3년 이내에 건물에 하자가 생기면 보증보험사에서 공사비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했다.

보수업체들은 주택가에 '하자보수 보증금 받아 드립니다'라는 내용의 전단지를 뿌려 입주자들을 유혹하기도 했다. 입주자 대표 이모(68)씨는 보증금에 대해 모르고 있다가 광고 전단지를 보고 건설업체 대표에게 '유령 공사'를 의뢰했다. 이씨가 사는 빌라에서는 하자보수 공사가 없었지만 이씨는 보증금 990만원을 받아 다른 입주자들과 나눠 가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하자가 없는데도 보증금을 타기 위해 허위공사에 동의한 주민들도 처벌 대상이지만 대표성이 있는 주민만 입건했다"고 말했다.

◆ 하자보수 보증금 제도는=아파트.빌라.다세대주택 등 공동주택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건축비의 3%를 준공 전에 건축주가 지방자치단체에 예치하고 건물에 하자가 생겼을 때 주택 소유자 50% 이상의 동의를 얻어 사용할 수 있다. 건물의 하자에만 사용되는 이 보증금은 건축 후 3년이 지나면 건축주가 회수한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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