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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교수들께 드리는 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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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강홍준
논설위원

과골삼천(<8E1D>骨三穿)이란 말이 있다. 공부에 어찌나 매진했는지 방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다는 뜻이다. 20여 년을 귀양살이했던 다산 정약용 선생 일화다. 책을 통해 접한 과골삼천이란 말은 공부에 담쌓고 살았던 나의 40대 중년을 송두리째 바꿔 버렸다. 책 읽는 기쁨, 공부하는 즐거움이 요즘도 새벽을 환히 밝힌다. 그래서 책과 가까이할 수 있는 기자라는 직업에 늘 감사하며 산다. 또한 기자보다 책과 더 가까이할 수 있는 직업으로서 교수도 늘 부러워했다. 인생삼락(人生三樂) 중에 마지막이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니 얼마나 행복할까.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가지고 일반화를 범하는 오류를 무릅쓰면서도 공부하고 가르치는 데 매진하는 교수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다. 교수라는 직함을 바탕으로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보다 바깥일에 더 관심이 많은 분들이 눈에 많이 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한 위원회엔 대학교수가 3분의 2 이상 되기도 한다. 대학에 돈을 줄 건지 여부를 결정하는 자리에도, 대학의 경영 정상화 여부를 판단하는 자리에도 늘 대학교수들이 있다.

 심지어 엊그제 안철수 대선 후보의 출정식에 함께한 사람들 중엔 안 후보의 연설을 듣고 감격에 겨워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대학교수의 얼굴도 접하게 됐다. 오후 3시에 하는 대선 출마 기자회견에 갈 수 있는 대표 직업이 교수나 변호사, 개인 사업자 말고 또 있을까.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 대선 캠프 인선을 보더라도 교수 직군이 전체 인원의 10% 이상은 차지하는 것 같다.

 서울과 직통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가 생긴 도시의 한 대학총장은 “고속도로 덕분인지 금요일이나 주말에 연구실에 남아 있는 교수들이 없다”고 통탄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주중 수업을 월·화·수요일에 몰아 하고 나머지는 서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교수들을 총장도 어쩌지 못한다고 한다. 또 다른 대학총장은 고교 선배인 동료 교수에게 제발 논문 한 편을 써 달라고 통사정하는데도 그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했다.

 교수가 남는 시간을 활용해 현실 정치나 바깥일에 관심을 갖는 건 잘못이 아니다.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에 뛰어드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못이 아니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처럼 지난 총선에서 후보 지원을 하면서도 연구 실적이 뛰어난 교수들도 분명 있다.

 교수들이 5년마다 열리는 대선에 징발되면서 그들이 떠난 뒤 캠퍼스엔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는 교수들이 남는다. 본연의 직업에 충실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마치 능력이 없어 남아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서로를 쳐다보는 악습이 반복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8대 국회에서도 폴리페서 방지법을 제정한다는 얘기는 있었다. 물론 통과되지는 않았다. 대학 스스로도 이 문제에 관한 한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 기껏해야 공직에 나가거나 선거에 출마하는 교수에게서 휴직서를 받는 수준이다. 언젠가 누군가 밖으로 나갈 수 있으니 그런 규제는 못 만들겠다는 심사인가. 인생삼락의 하나를 우습게 만드는 철새 교수들의 폐해가 큰데도 우리의 대학은 방관만 한다.

 대학은 공부와 가르침에 애쓰는 교수들을 허탈하게 하는 철새 교수들을 이제 정리해야 한다. 공직에 나가거나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에게서 휴직서가 아닌 사표를 받으라는 얘기다. 교수들이 못하겠다면 학생들이라도 나서야 한다.

 다산의 애제자였던 황상은 우리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산방에 처박혀 하는 일이라곤 책 읽고 초서(<9214>書)하는 일뿐이다.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말리면서 비웃는다. 하지만 스승은 내게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三勤)의 가르침을 남겼다. 이 말씀이 귀에 쟁쟁한데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그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정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에서 인용)

 복사뼈가 세 번 뚫릴 정도로 공부에 매진하는 스승, 이를 본받아 학문의 길에서 용맹정진하는 제자. 200년 전 이 땅에서 있었던 일을 이제 우리의 대학에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