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잔 사태 듣고 첫 시민봉기 "독재권력과 끝까지 싸우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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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중의 힘을 보여줬다. 정부군이 쳐들어오면 끝까지 싸우겠다."

우즈베키스탄의 국경도시 카라수를 지키는 시민군의 다짐이다. 인구 5만의 카라수는 지금 해방구다. 카라수는 시위대 수백 명이 사망한 사건이 터진 안디잔으로부터 80km 떨어져 있다. 영국의 더 타임스가 18일 서방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르포를 실었다. 더 타임스 기자가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국경 다리를 건너 카라수에 들어갔다. 우즈베키스탄 쪽 국경엔 아무런 검문검색도 없었다. 국경을 제외한 나머지 시 외곽 7km 지역은 정부군이 포위해 외부와 차단한 채 출동 대기 중이다.

카라수 시민들은 지난 13일 안디잔에서 벌어진 유혈사태 소식을 듣고 격분해 시 청사로 몰려갔다. 시장은 집단폭행을 당하다 도망쳤다. 다른 일반 공무원과 경찰 등 정부 관계자들도 쫓겨나거나 숨었다. 관세청과 경찰서 등 관공서와 공용차량이 불탔다. 도시를 장악한 시민들은 곧바로 강으로 달려가 키르기스스탄 국경으로 통하는 다리의 바리케이드를 치웠다. 바리케이드는 2년 전 정부에서 국경무역을 막기 위해 만들었다. 국내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이다. 키르기스스탄으로부터 값싼 중국산 물품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했다. 독재권력은 아예 사람들의 교류도 막아버렸다. 그 바람에 그동안 카라수 지역 주민 450명가량이 강물을 헤엄쳐 건너다 익사했다. 극도로 피폐한 상황에서 먹을 것과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강을 헤엄쳐 건너야 했다. 다리를 연 것은 지난 세월의 한풀이인 동시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퇴로 확보로 해석된다.

다른 지역보다 카라수 시민들이 먼저 봉기한 것은 이 같은 국경도시의 특수상황 때문이었다. 시민 악바르(35)는 "더 이상 이대로 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일어선 것이지 (정부에서 주장하는) 무슨 과격 이슬람이니 뭐니 하는 것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물론 시민들은 모두 무슬림이며 신정(神政)을 주장하는 이슬람 반정부 세력에 동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카라수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시민군은 전통 우즈베크 복장을 하고 구레나룻을 기른 무장집단이다. 리더인 바크티야르 굴라마모글리는 타슈켄트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던 엘리트다. 한때 국영 양말공장에서 일하다 국경무역을 하기도 했다. 정부의 규제와 간섭, 그리고 공무원들의 뇌물 요구에 지쳐 얼마 전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우리는 독재정권하에서 노예로 살아왔다. 민중들은 죽도록 일하고도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는 반면 부패한 권력의 하수인인 공무원과 경찰은 뇌물로 치부해 왔다"며 봉기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정부군이 공격해 들어올 경우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적 구호를 묻자 "이슬람"이라고 대답했다.

6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알려진 안디잔에서는 17일에도 운구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낮에는 무차별 연행이 이어졌고 밤에는 총성이 울렸다. 야간 통금 시간에 택시를 몰던 운전기사 3명이 보안군의 총격에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옛소련 시절부터 우즈베키스탄을 지배해온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선량한 시민은 단 한 명도 피살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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