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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최근 2년간…" 탈북자 충격 증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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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마카오에서 중앙SUNDAY 단독 인터뷰를 마친 김정남이 엘리베이터 속에서 취재팀에 손을 흔들고 있다(사진 왼쪽). 2012년 8월, 동부전선의 인민군 제4302군대 산하 감나무(여성해안포)중대를 방문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둘의 외모가 닮아 보인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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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서울로 들어온 탈북자 장길호(40대)씨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관련한 흥미 있는 증언을 내놨다. 그는 김정은이 20대 초반 병사 복무를 했고, 그 뒤 국가안전보위부·인민무력부 순으로 군부를 장악해 갔으며 군 계급은 중장으로 간주됐다고 했다. 또 “대장 칭호도 2010년 9월이 아니라 그전에 받았다”고 했다. 김정은의 군 장악력이 단단함을 보여 주는 증언이다. 특히 2010년 6월 6일 본지의 세계적 특종인 김정남 인터뷰와 관련, 당시 북한 상황을 확인해 주는 증언도 했다. 북한의 당ㆍ군 등에서 두루 경험을 한 그를 만나 봤다.

-김정은에 대해 어떻게들 말하나.
“그에 대해선 북한에서 극비다. 그러나 세찼다고(드세고 소란스럽다)들 한다. 엄마 고영희와 함께 금강산에 온 12세 김정은을 내가 아는 사람이 직접 봤는데 너무 설치고 다녀 부관들도 어쩔 줄 몰랐다더라. 문수초대소에서 사는 김정일의 가족을 위해 제2호위총국이 있으며 거기에 부관장 이하 7명의 생활부관이 있었다. 부관들은 정철과 정은을 대장님, 대장님 하고 불렀다. 정은아! 이렇게 못 한다. 1990년 김정일이 정은을 데리고 군을 시찰하기도 했는데 후계가 아니라 고우니까(예쁘니까) 데리고 다닌 거다.”

-청소년기는 어땠나.
“김정은이 19세 정도인 98년께 스위스에서 돌아온 뒤 2000년께 군에 갔다. 처음엔 강원도 5군단, 다음에는 황해도 4군단이다. 1년은 전사(우리의 훈련병), 이후엔 초급병사(이병)를 했다. 그때 국가보위부는 훈련된 사람을 중사로 보내 정은의 분대장을 하게 했다. 모두 1년 반쯤이다.”

-그걸 어떻게 아나.
“알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다. 인민무력부 참모정치보위국의 간부도 그 얘기를 했다. 김정은은 제대 뒤 강건군관학교에서 3년 과정을 6개월에 마쳤다. 다음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석사 교육을 두 달 정도 받고 이어 김일성군사대학에서 6개월인가 1년 정도 있다가 국가보위부로 갔다. 2008년엔 인민무력부를 제대로 맡았다. 직책에 임명된 게 아니라 김정일이 통괄해 보고 배우라 한 것이다. 김정일을 대신한 것이다. 2002년 서해교전 때는 인민무력부 작전부의 일도 봤다. 그래서 북에선 김정은을 서해교전의 영웅이라고 한다. 대장 칭호도 북에선 2010년 9월 김정은에게 줬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론 그 이전이다. 2009년 국방위 극비 회의자료를 봤는데 거기에 이미 대장 칭호를 준 것으로 돼 있었다. 이후 2010년 11월 연평도 포사격 훈련(연평포격)을 지도했다. 황해북도 신계군 포 지도국 620부대 방사포를 밤새 끌어다 쐈다.”

-김정은의 성격은 어떻다 들었나.
“즉심스럽다(적극적)고 한다. 총 쏘기, 말타기, 수영, 농구 같은 취미가 많았다.”

-뚱뚱한데 농구를 하나.
“직접 못 봤지만 엄청 잘한다더라. 당시엔 말랐었다. 11세 때 사진을 봤는데 아주 날씬했다. 비행 조종 기술도 뛰어나고. 이후에 김일성을 닮게 하려고 살찌운 거란다.”

-김정은이 김정남을 제거하는 우암각 사건을 말해 달라. 최근 북한개혁방송(대표 김승철)에서 사건 전말을 얘기했는데 당시 어땠나. (※2010년 6월 중앙SUNDAY는 김정남 인터뷰를 성사시키면서 고위급 출신 탈북자의 말을 인용, “2009년 4월 초 평양 중구역의 우암각으로 국가보위부 수색팀이 들이닥쳐 관리 몇 명을 연행해 조사했다. 김정남 측근이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조사를 받고 나온 최측근의 전화를 받은 정남은 서둘러 싱가포르로 도피했다”고 보도했었다. <아래 사진> 그런데 김정남 인터뷰 사실을 몰랐던 장씨도 같은 맥락의 증언을 했다.)

“김정남이 한 달 뒤 들어온다는 걸 알고 김정은이 가짜 모임을 만들게 했다. 김정남 측근이 군과 보위부의 대좌급(대령), 당내 책임지도원, 만경대 혁명학원 중간간부 같은 과장급 30명인데 그들이 참석했다고 들었다. 우암각(그는 원래 발음은 의암각이라고 했다)에서 3일간 파티와 회의를 했다. 김정남이 오기 전에 늘 거기서 모이고 제출보고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국가보위부 타격대가 덮쳐 우암각 경비병과 두 시간 반 정도 총격전이 벌어졌다. 다들 잡혀갔다.”

-그 말을 언제, 누구한테 들었나.
“2010년이다. 문수초대소의 생활부관을 하는 지인뿐 아니라 당시 내가 아는 여러 과장도 다 아는 얘기였다.”

-당시 김정은의 보직은 뭐였나.
“국가보위부와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작전부를 맡고 있었다. 직책 없이 김정일을 대리했다. 그러나 내부에선 중장급이라고 했다. 북에선 군사 칭호보다 직무를 높이 본다. 무엇보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아들 아닌가.”

-그 다음 김정남은 어떻게 됐나.
“한 달 후 김정남이 들어오려 하다가 못 들어왔다고 했다.”

-김정은이 왜 그랬을까.
“2009년까지 김정일은 정남이한테 물려주기로 80%는 생각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김정은은 ‘정남이가 권력을 뒤집고 쟁탈하려는 그룹을 만들고 있다’는 걸 제출하면 아버지가 의심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당시 정남은 계속 나가 살았다. 정은을 우습게 봤다. 들어와 봐야 한 달쯤. 돈 받아선 나가고. 김정일이 보기에 ‘맡기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까’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정은은 계속 북에 있었다. 김정일 현지지도에도 동행했다.”

-사건 뒤 아버지에게 보고 안 됐나.
“아버지가 ‘정남이가 왜 안 들어오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그러나 김정은이 관리하는 보위부에서 ‘김정남이 이래이래 파티하는 조직을 갖고 그룹을 꾸리기 시작하더라’고 보고했다. 김정일은 일언반구도 없었고.”

-김정은이 얼마나 힘이 있었나.
“2008년 인민무력부를 맡게 되자 6개월 만에 대좌급 중 50세 이상은 다 제대시켰다. 또 인민무력부 청사 안에서는 발걸음이란 노래를 부르게 했다(발걸음은 김정은 찬양 노래다). 인민무력부 내 규율을 강화해 옷 단추를 채우고 다니게 했다. 자신은 사복을 입고 인민무력부 기관들을 혼자 다녔다. 그때는 말랐었다. 그때 ‘정은이가 중장 직급’이란 말들을 했다. 김정일은 앓기 시작하면서 정은에게 의지했다. 실체 통치한 거나 다름없다. 김정남이 제거된 뒤인 2009년부터는 샛별장군이란 노래가 나오고 인민군대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없었다. 그 뒤 2년 사이 뚱뚱해졌다.”

-김정일이 김정은을 예뻐했나.
“김정은이 희더운 소리(농담)도 잘하고 아버지 기분을 잘 맞췄다고 들었다. 예뻐서 정은에겐 큰소리도 안 냈다고 한다. 김정일은 북한에서 조폭하다(무자비하다)고 본다. 김일성은 너그러웠는데 김정은이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한다. 배짱도 좋고.”

-서구 유학한 김정은이 개방적이지 않나.
“서구물 먹었으니 깬 사람일 것이라고, 그래서 개혁·개방을 할 거라고 많은 사람이 기대했다. 그런데 내 생각에 서구 생활을 해 봤으니 풀어놓으면 통치가 힘들고 권력이 흔들릴 거라는 걸 잘 알 것이다.”

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정리=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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