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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종북세력 탐욕이 부른 진보정치의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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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통합진보당 노회찬 의원(가운데)을 포함한 지역구 의원들과 제명 의원들이 탈당 기자 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기호·정진후·김제남·노회찬·심상정·강동원·박원석 의원. [오종택 기자]

통합진보당이 결국 쪼개졌다. 당을 만들었던 세 개의 그룹 중 두 곳의 리더인 국민참여계의 유시민 전 대표와 통합연대의 심상정·노회찬 의원이 13일 한꺼번에 탈당했다. 민주노총 쪽의 조준호 전 공동대표도 뒤를 따랐다. 국회는 하루 종일 탈당 선언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최순영·홍희덕·곽정숙 전 의원과 박승흡 최고위원, 지방의원 29명도 줄줄이 탈당을 선언했다. ‘통진당 엑소더스(exodus·다수의 동시탈출)’의 날이었다. 당엔 옛 당권파만 남았다. ‘경기동부당’ ‘꼬마통진당’이 된 셈이다. ‘종북(從北)’ 의혹을 받았던 바로 그 세력만 남은 거다. 창당 10개월 만의 파국이다.

 통진당은 지난해 12월 창당 때만 해도 진보정권 창출과 같은 큰 그림을 그렸다. 이어 4·11 총선에서 진보정당 사상 최대 의석(13석)을 챙겼다.

 하지만 먹을 게 생기자 NL(민족해방)계가 중심이 된 경기동부연합, PD(민중민주)계인 심상정·노회찬 그룹, 친노무현계 유시민 전 대표 간 조합의 이질성이 급격하게 표출되기 시작됐다. 특히 경기동부연합은 당내 패권 장악을 위해 비례대표 경선 부정을 저질렀다. 이게 당 내홍의 단초가 됐다. 계파 이익을 앞세운 ‘총선용 기획정당’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분당을 막기 위해 옛 당권파 일각에서조차 이석기 의원의 2선 후퇴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 의원은 요지부동이었다. 옛 당권파 핵심 관계자는 “강기갑 전 대표의 단식투쟁이 시작되면서 이 의원의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전방위로 설득했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구멍이 생기고 그러면 끝없이 무너진다’고 버티더라”며 “분당 원인은 이 의원의 욕심이 제공한 셈”이라고 했다.

 윤종빈(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5개월여를 끌었던 통진당 내분 사태는 한국 정당사의 해프닝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통진당 분당으로 진짜 진보정치 세력과 가짜 진보세력 간 구분이 다소 명확해졌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이날 심·노·강동원 의원과 앞서 ‘셀프(self) 제명’을 통해 무소속이 된 서기호·박원석·정진후·김제남 의원 등 탈당파 7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진보당을 좋은 당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사과 드린다”며 “국민을 등진 ‘죽은 진보’를 떠나 국민이 원하는 진보의 길로 가겠다”고 했다.

 탈당파는 오는 16일 전국 지역책임자들이 모이는 워크숍을 통해 향후 진로를 모색한다. 새 진보정당 창당이 목표지만 현실은 잿빛이다. 7명의 국회의원으론 원내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민주노총의 지원을 바라고 있지만 현재로선 가타부타 말이 없다.

강동원 의원은 “탈당한 사람끼리만 다시 창당해 봤자 국민이 용인해 줄까 싶다”며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코앞에 닥친 대선판에서 역할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탈당파는 12월 대선 전까지 창당을 하지 않기로 했다. “정권교체에 매진하기 위해서”가 명분이지만 대선 후보를 낼 처지가 아니다. 더욱이 민주통합당은 야권연대 파기를 예고하고 있다. ‘꼬마 통진당’은 물론 탈당파와의 연대에 관심을 둘 상황이 아니다. 곧 대선 출마 입장을 발표할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연대가 더 중요해서다.

 ‘꼬마 통진당’도 미래가 불투명하긴 마찬가지다. 통합 당시만 해도 7만여 명에 달했던 진성당원(당비를 납부하는 당원)은 4만5000여 명으로 줄었다. 두어 달 사이에 당적을 버린 당원만 2만여 명이 넘는다. 대부분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과 국민참여계·통합연대 측 당원들이다.

 의석수(6석)는 탈당파보다 적고 ‘종북당’이란 꼬리표는 원내 활동을 제약할 게 뻔하다. 이정희 전 대표를 대선주자로 내보낸다는 방침이지만 표를 얼마나 얻을지 아무도 자신하지 못한다.

양원보·류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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