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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병원의 지방 의료계 잠식, 어떻게 봐야 하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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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라식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안과 전문의 K원장은 한 달 째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새로 생긴 옆 건물 2층에 서울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병원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부터였다. 새 빌딩에는 ‘서울 유명 안과 000 병원 0일 오픈’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H씨는 “최신장비와 경영 노하우를 가진 안과병원이 내려오면 환자들이 그쪽으로 다 몰려갈 것 같다. 마땅히 자본을 끌어들일 방법도 없다. 경영을 배운 적도 없어 특별한 마케팅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병원 식구들은 어떡하며 임대료는 어떻게 마련할 지 눈앞이 캄캄해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중앙일보헬스미디어가 기획하는 '벼랑에 선 지방병원, 국가 의료시스템 위협한다' 시리즈의 여섯 번째는 지방으로 진출하는 수도권 네트워크 병원을 조명한다.

프랜차이즈·네트워크 병원, 부산·대구에 가장 많이 진출

지방병원을 위협하는 요인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첫 번째 위기 요인이 서울로 향하는 환자들의 엑소더스 현상이라면, 두 번째는 서울에서 내려오는 네트워크 병원의 위협이다. 8월 2일부터 네트워크 병원이 사라지고 프랜차이즈, 또는 지주회사 형태로 운영되긴 하지만 비교적 큰 자본과 최신 마케팅기법으로 무장한 프랜차이즈 병원의 위협은 그대로다. 이미 운영되고 있는 네트워크 병원의 위협도 여전하다.

프랜차이즈 병원 설립이 가장 활발한 지역은 지방 대도시다. 인구가 많고 소득수준이 높은 곳부터 먼저 생긴다. 병원네트워크 컨설턴트 클리닉헬프 지종현 이사는 “부산·대구 등 대도시 위주로 철저한 시장조사와 위치와 수요 조사 후 프랜차이즈 병원이 들어선다. 정형외과와 치과·피부과·안과·한의원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헬스미디어가 365mc·고운세상피부과·룡플란트 등 대표적인 네트워크 병원 10여 곳을 분석한 결과, 네트워크 개수가 가장 많은 곳은 오라클피부과였다. 전체 네트워크(프랜차이즈)는 60여 개로, 서울과 인천, 경기도 포함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병원이 경상·전라·충청·강원도에 분포돼 있었다. 그밖에 프랜차이즈 별로 각각 2~5개의 네트워크 병원이 지방에 진출해 있었다.

이들이 공통으로 많이 진출한 곳은 부산이었다.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보니 2~3개 지점을 낸 네트워크 병원도 있었다. 그 뒤로는 대구가 가장 많았고, 다음 충청도와 전라도가 비슷했다. 강원도는 네트워크 진출이 적은 편이었다. 지방 네트워크 병원 홈페이지에는 공통적으로 ‘서울 00지점 명성 그대로 동일한 환경, 시스템, 수술(시술)실력을 자랑한다’와 같은 광고 문구가 걸려 있었다.

기본 치료 무시, 비보험 위주로만 진료?

대구의사협회 김종서 회장(김종서내과)은 “최근 5~7년 전부터 서울의 네트워크 병원들이 지방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서울의 프랜차이즈 커피숍(스타벅스·커피빈 등)이 지방으로 내려온 시기와 거의 비슷하다. 규모가 크고 맛이 향상된 커피 전문점이 대구 시내 쟁쟁한 커피숍들을 초토화했듯이 병원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지역 주민이 좀 비싸더라도 브랜드 인지도가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찾는 것처럼 병원도 서울 본원의 브랜드 파워가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서울 유수의 네트워크 병원장은 확실히 지방 병원장의 마인드와는 다른 것 같다”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탓에 지방의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먼저 기본 치료는 무시하고 비보험 위주로만 진료하는 행태를 문제로 꼽았다. 김 회장은 “비보험 상품에 주력하고, 상업화된 시스템 탓에 기본 진료를 도외시하는 병원도 많은 것 같다. 가령 안과의 경우 눈의 염증 같은 것도 봐야 하는데 그런 치료는 하지 않고 라식·백내장 등 돈이 되는 시술만 하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고가의 의료비도 문제로 지적된다. 같은 치료를 받아도 프랜차이즈 병원에서는 더 비싼 경우가 많다.

상도에 어긋나는 마케팅을 펼치는 곳도 간혹 있다. 강원도의사협회 관계자는 “돈을 많이 받아낼 수 있는 비보험 전략 상품을 제외하고 나머지 치료에 대해서는 본인부담금을 받지 않고 진료해 주는 네트워크 병원도 봤다. 일종의 미끼 상품을 파는 거다. 환자를 모객해서 병원으로 실어가는 방법이나 마케팅 수단에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병원이 몇 있다”고 말했다.

치열한 경쟁 거치며 지방병원 수준 높이는 계기될 수도

하지만 네트워크·프랜차이즈병원의 지방 진출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시대 흐름이라고 보기도 한다.

한국병원경영연구소 이용균 실장은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이 생겼을 때 의료계에선 많은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 병원 수준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준 계기가 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자본과 마케팅력으로 무장한 기업형 병원의 등장으로 경쟁이 치열해졌고 수도권 전체 의료기관 수준이 상향 평준화된 것이다. 경남의사협회 박양동 회장(창원 서울아동병원)은 “좋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우리나라가 사회주의 국가도 아닌데 네트워크나 프랜차이즈 병원의 지방 진출을 뭐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프랜차이즈 병원이 들어서면서 주변 병원들이 자극을 받는 것 같다. 친절교육을 시키고, 환자 중심의 시스템으로 재정비하는가 하면 병원시설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쟁은 치열해 죽어나가는 곳도 많겠지만 지역 의료수준도 서울과 비슷하게 상향 조정되는 계기가 되지 않겠냐는 게 박 회장의 시선이다. 단, 프랜차이즈나 네트워크 병원의 병폐였던 성과주의는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히려 지방병원이 강세여서 네트워크병원이 발을 못 붙이는 사례도 있다. 대전선병원 신정옥 팀장은 “대전에서는 정형외과 쪽이 특히 강세다. 전통적으로 유명한 병원이 지역사회 깊게 자리잡고 있다. 서울과 가까워서 그런지 친절교육이라던가 병원운영 방식에 있어서도 수도권과 별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유명네트워크 병원, 특히 정형외과 쪽은 대전에서 힘을 못쓴다”고 말했다.

부민병원처럼 지방병원이 오히려 서울로 진출한 사례도 있다. 정흥태 부민병원장은 “지방병원이 살아남으려면 독보적인 의료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다. 치료 잘한다는 소문은 환자들 사이에 더 빨리 퍼진다. 하지만 이젠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네트워크 병원과 맞서려면 서비스 경영에 관심을 기울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존 지방병원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환자가 오니까 친절이나 서비스 면에서 떨어진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환자 편에 서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까, 어떻게 감동을 시킬까를 고민한다면 네트워크나 프랜차이즈 병원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균 실장도 “지역병원은 시나 도 행정부, 그리고 주민들과 더 깊게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것을 무기로 삼되 환자에 대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기존 고객은 도망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규모와 시설, 장비 도입 면에서 밀린다면 여러 의사가 합작하는 연합병원 형태로 가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jy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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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영 기자 jybae@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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