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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계약서, 이런 내용 들어가면 '무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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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지구 내 학교의 개교 시기 및 건물 위치는 교육청 결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으며 ‘을’은 이에 대해 ‘갑’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2009년 분양된 인천 H아파트가 분양계약서에 담았던 조항이다. 분양 당시만 해도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아파트 인근에 들어설 거라고 광고를 해 인기를 끌었던 단지였다. 하지만 올 3월 입주가 시작됐는데도 초등학교 개교 시기는 늦춰졌고, 중·고등학교는 설립 계획이 없었다. 학부모 입주자는 분통을 터뜨렸지만 분양 당시 작성한 계약서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입주자 중 한 명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약관이 불공정하다며 심사를 청구했다. 공정위는 고객의 권리를 이유 없이 제한하는 해당 약관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같은 부동산 매매 계약 관련 불공정 약관의 대표적인 유형 11개를 11일 발표했다. 모두 약관 심사 결과 ‘무효’로 판정돼 공정위가 시정조치를 내린 조항이다.

 상가나 아파트 분양 땐 팸플릿이나 조감도 등 홍보물이 실제와 달라 다툼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일부 사업자는 “팸플릿 등은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자료이고 실제와 차이가 있어도 어떠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계약서에 못박아 놓기도 한다. 하지만 공정위에 따르면 이는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으로 모두 약관법상 무효다.

 지나치게 많은 위약금을 매기는 것도 불공정 약관이다. 한 상가는 계약서에 “계약 해지 시, 계약금만 납입한 경우엔 총 분양대금의 20% 중도금을 납부한 경우엔 총 분양대금의 30%를 위약금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가 시정조치를 받았다. 공정위 표준약관에 따르면 계약 해지 위약금은 총 분양대금의 10%로 돼 있다. “상가 관리비를 연체하면 연 34%의 연체료를 체납금액에 더해 납부해야 한다”는 조항 역시 과중한 손해배상 의무를 고객에게 부담시키는 불공정 조항이다.

 상가 관리업체를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선정하게 하는 약관도 무효다. 상가 관리회사를 지정할 땐 분양받은 사람들로부터 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계약서 이외의 특약사항을 일절 인정하지 않는다”는 식의 조항도 약관법 위반이다. 약관법에선 사업자와 고객이 따로 합의한 사항이 있을 경우 이를 약관보다 우선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이유태 공정위 약관심사과장은 “부동산 거래를 할 때 혹시 이런 조항이 들어가 있는지 소비자가 꼼꼼히 살펴보고, 적극적으로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가급적 공정위가 승인한 표준약관을 사용하는 사업자와 거래할 것”을 조언했다. 표준약관을 사용한 약관은 첫 번째 페이지 우측 상단에 공정위 표지가 들어가 있다. 만약 이미 불공정 약관으로 인해 피해를 본 고객이라면 한국소비자원(상담전화 1372) 분쟁조정을 통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 개인이 아닌 소상공인은 한국소비자원 대신 한국공정거래조정원(상담전화 1588-1490)에서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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