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사채이자 낮게 묶다가 급전 돈줄마저 끊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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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임시국회에서 심의할 금융이용자보호법을 놓고 사채 이자를 어느 수준으로 제한할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자율 상한선을 가능한 낮게 정해 이보다 높게 받는 사채업자를 처벌하고 서민이 싼 금리로 돈을 빌려쓰도록 하자는 것이 시민단체의 논리다. 참여연대 안진걸 간사는 "은행 등 제도권 금리는 계속 낮아지는데 사채의 이자율 상한선을 연 60%로 정하는 것은 사채업자의 폭리를 인정하는 셈" 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채업자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검토 중인 이자율 상한선이 사채시장의 실제 금리보다 낮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일부의 주장대로 이자율 상한선을 더 낮출 경우 그나마 세금을 내며 영업하는 사채업체마저 문을 닫게 되고, 사채 공급이 줄어 서민이 내야 하는 금리는 더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은 겉 모양이 좋게 경제제도를 만들더라도 시장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쓸모가 없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경제학으로 본 이자율 제한의 부작용〓사채를 빌려쓰려는 사람(사채수요)과 사채를 꿔주려는 사람(사채공급)이 사채시장에서 만나 정한 적정이자율을 연 60%라고 하자. 이 경우 1천억원이 사채시장의 규모다.

그런데 이자율을 30%로 낮추면 사채수요는 1천3백억원으로 늘지만 실제 시장에 공급되는 사채는 7백억원으로 줄어든다. 이자율이 낮아진 대신 3백억원 만큼을 구하지 못하는 서민층이 생기게 된다.

이자를 더 물고라도 급전을 구하려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며, 이들을 대상으로 법이 정한 상한선보다 높은 이자를 받으며 돈놀이를 하는 또 다른 암(暗)시장이 생겨나게 된다.

재경부 관계자는 "암시장에서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 입장에선 위험 부담이 커진 만큼 금리를 더 올리려 들 것" 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가 그전에도 있었다. 외환위기 이전에 기승을 부렸던 은행권의 꺾기가 좋은 예다. 돈을 쓰려는 기업은 많고 은행의 대출 여력을 한정돼 있었다. 당시 정부가 대출 금리를 사실상 규제한 탓에 대출시장은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았다. 은행들은 정부 지도 금리로 돈을 빌려준 대신 기업에 예금이나 적금을 들도록 강요했다. 겉으론 기업들이 연 15% 안팎의 금리로 돈을 구했지만, 실제론 다른 데 쓸 돈을 은행에 묻어둠으로써 기업은 물론 사회 전체가 비용을 치렀다.

◇ 사채시장의 현실〓금융감독원에 신고된 고리 사채 피해사례의 평균 이자율은 연 2백70%. 국세청에 일반법인으로 신고한 뒤 세금을 내는 법인 사업자들은 월평균 7.2%(연간으로 환산하면 90~1백20%)를 받는다.

금감원은 최근 사채업체 5백여곳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한 사채업자 1백여명이 제시한 이자율 상한선은 최저 월 8.4%(연 1백. 8%).이들은 이자율 제한을 받는 대출금액도 정부가 검토 중인 3천만원에서 1천만원으로 낮춰달라고 건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자율 상한선을 연 60% 정도로 하면 신용불량자들은 찾아갈 곳이 없다" 면서 "이자율 상한선을 무리하게 낮추면 사채시장의 기능이 마비될 수도 있다" 고 말했다.

허귀식.이상렬 기자ksl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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