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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 대학생, 은행원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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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경남은행 정규 직원으로 채용된 최성우(왼쪽)·이순재씨가 지난 7일 경남 창원시 은행 본점에서 사원증을 내보이며 웃고 있다. [송봉근 기자]

최성우(30)씨는 올 초만 해도 ‘신용유의자(옛 신용불량자)’였다. 대학원 졸업까지 빌려 쓴 학자금 때문이다. 넉넉지 않은 집안 출신인 그가 부산 한 사립대에 입학해 지난해 초 석사 과정을 졸업하는 데는 꼬박 10년이 걸렸다. 해양 방파제 공사장 막일, 조선소 잡역부, 신문배달원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학비를 다 댈 수 없었다. 10년간 쌓인 빚은 2000여만원. 취업 때문에 동분서주하는 사이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은 밀려갔다. 올 1월 최씨는 “대출이 6개월 연체돼 신용유의자로 등록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신용이 안 좋다는 낙인까지 찍혔으니 과연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눈앞이 캄캄했죠.”

 그런 그에게 지난 3월 한줄기 빛이 나타났다. 경남은행에서 ‘신용회복인턴’을 모집한다는 문자가 왔다. 신용유의자와 과다채무자(학자금 대출 500만원 이상) 중에서 인턴 50명을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은행이 한국장학재단과 손잡고 학자금 대출로 인한 신용유의자를 구제하기 위해 만든 제도였다. 인턴 과정을 마치면 신용유의자 꼬리를 떼주고 연체 이자도 줄여준다고 했다.

 그는 4개월간 경남은행 디자인팀 인턴으로 일했다. 그리고 인턴 마지막 날, 은행으로부터 “정식 직원으로 특별채용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씨는 “절벽에서 외줄타기를 하다 살아난 기분”이라며 웃었다.

 금융권 최초로 신용불량 대학생 두 명이 정식 은행원이 됐다. 지난 7월 경남은행이 채용해 최근 현장에 배치한 최씨와 이순재(28)씨 등 두 명이 주인공이다. 최씨는 신용유의자, 이씨는 은행이 자체적으로 분류한 과다채무자였다.

 저신용자는 일반 직장에서도 채용을 꺼린다. 직원의 신용도를 최우선으로 따지는 금융권에선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은행 측은 학자금 대출로 인한 문제는 경우가 다르다고 봤다. 한기환 경남은행 인사부장은 “개인의 문제보다 구조적 문제가 큰 데도 은행은 무관심하고 당사자는 너무 위축됐다”며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서로 윈-윈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경남은행의 모회사인 우리금융지주는 연내 500명의 신용회복인턴을 선발할 계획이다.

 이씨도 실낱같은 희망을 현실로 바꾼 경우다. 그는 지방국립대 경영정보학과를 다니며 금융인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네 차례 학자금 대출로 쌓인 빚이 800만원으로 늘었다. 8월로 예정된 졸업만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혔다고 했다. “졸업을 했는데 학자금 대출을 못 갚으면 바로 연체자가 되거든요. 금융회사에 취직하고 싶었지만 빚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두려웠어요.” 인턴 공고를 보고 그는 이를 악물었다고 했다. 은행에 취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4개월 동안 눈에 불을 켜고 일했어요. 시키지 않는 일도 찾아서 했어요.” 그는 인턴 때 쌓은 ‘신뢰’ 덕택에 지난 7월 1600명이 몰린 공개채용에서 합격자 50명 안에 이름을 올렸다.

  최씨와 이씨는 “빚에 허덕이는 대학생에게도 많은 취업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동기들 중에 학자금 대출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고,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졸업과 동시에 연체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며 “ 이런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혜미 기자

신용유의자

기존의 ‘신용불량자’를 순화한 용어다. 학자금 대출의 경우 대출을 받은 뒤 원리금이 6개월 이상 연체되면 은행연합회에 신용유의자로 등록된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으로 학자금 대출로 인한 신용유의자는 3만7000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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