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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낯설게 하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7호 04면

고교 시절 국어책에서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라는 용어를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좀 어려운 단어여서 지금까지 생각이 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쉽게 말하면 ‘낯설게 하기’죠. 맥락을 바꿔 (문화적) 충격을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2012~2013 국립 레퍼토리 시즌의 개막작으로 5일부터 남산 국립극장에서 선보인 판소리 오페라 ‘수궁가’를 보고 이 용어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국립창극단이 판소리 현대화를 위해 연출을 의뢰한 아힘 프라이어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마지막 제자여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무대는 화려했습니다. 안숙선 명창이 3m 높이의 거대한 치마사다리 위에서 좌중을 압도했고, 무대는 큰 붓으로 쓱쓱 그려낸 거대한 화폭이었습니다. 동물 탈을 쓴 배우들의 절창도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런데 보면서 무대에 온전히 몰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2%가 부족했습니다. 왜 이럴까. 그때 옆좌석에 앉아 있던 문화유산국민신탁 김종규 이사장이 슬쩍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판소리인데 아무 추임새도 없이 객석에서는 조용히 보고만 있잖아. 판소리는 무대와 객석이 함께 주거니받거니 어우러져야 제맛인데 말이야.”
아, 그 말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판소리 한마당이 판소리 오페라라고 바뀐 이유가 있겠습니다마는, 뭔가 김빠진 느낌이 들었던 것은 저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네요. 이것도 ‘낯설게 하기’의 일환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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