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라 다른 게 아냐 사람은 누구나 달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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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호 26면

저자: 조선정 /출판사: 민음사/가격: 1만8000원

제인 오스틴(1775~1817)은 하나의 상징이다. 사랑을 꿈꾸는 여성들의 로망을 구현해 낸 ‘오스틴표 로맨스’는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 생명력을 잇고 있다.
‘오스틴표 로맨스’의 정점에 서 있는 작품이 1813년 발표된 『오만과 편견』이다. 이 소설은 200여 년이 넘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다양한 문화 텍스트로 변주되며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영국 BBC의 동명 미니시리즈와 조 라이트 감독의 동명 영화는 소설을 브라운관과 스크린으로 옮긴 전통적 방식의 접근이다. 반면에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2001)와 ‘제인 오스틴 북클럽’(2007),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 다시 쓰기’(2008) 등은 원작에 현대적 해석과 변주를 가미한 새로운 시도다.

서울대 인문 강좌 시리즈2 『제인 오스틴의 여성적 글쓰기』

책은 이처럼 강력한 텍스트에 대한 지적 해부작업이다. 또한 이를 단순한 로맨스 소설로 읽는 시각에 대한 경계이기도 하다. 저자는 프랑스 혁명 이후 격동기 유럽을 살았던 제인 오스틴이 소설을 통해 욕망 앞에 당당한 근대 여성상을 보여줬다고 강조한다. 문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작품과 작가 분석임에도 책장이 쉽게 넘어가는 것은 이 책이 탄생한 배경 덕분이다. 책은 2010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서울대와 민음사가 공동으로 운영한 ‘서울대 인문 강좌’를 지면으로 옮긴 시리즈 중 하나다.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카프카, 유대인, 몸』과 3권이 동시에 출간됐다.

저자에 따르면『오만과 편견』의 생명력의 기원은 현실에 단단히 발붙인 실재성이다. 소설 속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이 살고 있는 당시 상황은 오늘의 여성이 감내하고 견디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집을 보내려는 부모의 닦달을 견뎌야 하고, 권위와 복종을 강요하는 상류층 인사들의 권력 행사에 맞서야 하는 등 여성으로서, 사회적 약자로서 세상과 맞서야 하는 엘리자베스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모습과 중첩된다.
전 세계 수많은 독자가 『오만과 편견』에 열광하는 것은 각종 제약과 제도적 굴레 속에서도 어엿한 주체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엘리자베스의 모습 때문이다. 원치 않는 청혼을 당당하게 거절하고, 아들의 가난한 상대 여성을 함부로 대하는 ‘막장 드라마’의 시어머니처럼 엘리자베스를 무시하는 다아시의 이모 캐서린 드 버그 여사에게도 꿀리지 않는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오만과 편견』은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성장 소설의 성격이 강하다. 오만에 사로잡힌 다아시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공감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사랑의 본질에 접근해 간다. 편견에 치우쳤던 엘리자베스도 오해를 풀면서 사랑에 마음을 연다. 인격의 성숙과 함께 평등해 지는 관계, 이것이 소설의 근저에 깔린 덕분에 『오만과 편견』은 여성 문학의 고전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작가의 열린 시각도 한몫했다. 저자는 “오스틴 소설의 주제는 단연 여성이지만 그것은 그저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는 식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오스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다름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차이”라고 말했다.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남성에 대한 분노가 아닌 인간에 대한 창조적인 탐구를 할 수 있었고, 그 산물이 불멸의 작품 『오만과 편견』이 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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