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지상의 맛집] 연희동 '연희칼국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맘 때면 칼국수집 메뉴판에는 빨간색으로 적힌 '여름철 별미 콩국수 개시' 가 슬그머니 등장한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칼국수를 찾는 손님들이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름철 내내 칼국수만을 파는 음식점이 있다면 아무리 장사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연희손칼국수' 집이 그렇다. 여름철을 13번이나 지냈지만 한여름에도 칼국수만을 고집하는 집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간판을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개업할 때 남의 집 지하 차고를 벗어나 번듯한 3층 건물을 짓고 성업 중이다.

이 집의 칼국수(5천원) 는 사골 국물에 끓여낸다. 12시간 우려낸 사골 국물은 다소 느끼하다고 생각할 만큼 걸쭉하다. 면발은 다른 집의 칼국수보다 가늘고 부드럽다. 나머지는 별다른 특징이 없다. 고명이라곤 채 친 파.당근.지단 뿐.

그러나 이들이 어우러진 맛은 묘한 마력을 발휘한다. 맑은 국물을 그대로 먹으면 뜨거운 맛이 설렁탕처럼 시원하게 와닿고, 파와 고춧가루로 만든 양념장을 풀면 육개장처럼 눈가에 땀방울이 맺히면서 정신이 번쩍 든다. 전날 과음으로 더부룩하던 속도 확 풀린다.

여기에 따라 나오는 반찬은 김치 두 가지. 붉은 색 겉절이와 하얀 색 백김치다. 절인 배추를 당일 아침 멸치 젓국을 넣고 버무려내는 겉절이 김치는 매콤한 반면 찹쌀 풀물을 부어 이틀 정도 익혀 내는 백김치는 쌉쌀하다. 이 집을 자주 찾는 사람들은 두 김치를 번갈아 맛보는 재미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집에는 칼국수 말고 한가지 메뉴가 더 있다. 1만원짜리 수육인데 못먹고 나오면 후회한다. 칼국수를 먹기 전에 3~4명이 에피타이저로 먹을 만하다.

주인이 "남는 게 없는 서비스 메뉴" 라고 할 정도로 가격에 비해 양도 많고 고기 질도 좋다. 특히 반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수육이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휠체어를 쓰는 장애자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손님들을 위해 1층에 전용공간을 마련해놓고 있어 친근하게 와닿는 곳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