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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통신요금 시대 흐름에 맞게 손질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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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동통신 원가 공개를 둘러싼 법정 다툼이 오늘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참여연대와 방송통신위원회 가운데 법원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든 통신요금이 또다시 사회문제로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통신회사의 영업비밀인 원가와 수익구조를 공개하라는 요구는 무리다. 외국에서도 통신 원가를 공개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하지만 가구당 통신비가 월평균 14만원이 넘고, 정치권은 ‘반값 통신요금’을 요란하게 외치고 있다.

 이제 방통위의 행정지도에 따른 요금 승인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사회적 눈치를 보며 ‘기본료 1000원 인하’ 식의 땜질 처방으론 통신환경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다. 카카오톡 같은 무료 문자앱이 나오고, 무선인터넷 사용량이 폭증하는 마당에 음성통화·문자메시지 위주의 수익구조는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들다. 무제한 정액제로 20%의 헤비 유저(휴대전화 과다 사용자)가 전체 트래픽의 95%를 점유하는 현실도 뒤집어 보면 나머지 대다수의 소비자들로선 손해를 보는 느낌이다.

 지금 삼성전자·애플의 특허 소송에만 눈길을 빼앗길 때가 아니다. 머지않아 제2의 애플 쇼크, 구글 쇼크가 덮칠지 모른다. 애플은 지난해 ‘다이내믹 캐리어 셀렉션’의 특허를 획득했다. 통신사에 가입하지 않아도 전 세계 어디든 휴대전화만 갖고 있으면 가장 싼 통신서비스를 골라주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렇게 되면 통신업체들은 애플의 하청업체 신세가 된다. 구글도 안드로이드OS와 모토로라 매입을 양 날개 삼아 전 세계 무선통신 시장에 거대 MVNO(이동통신재판매사업자)로 진입할 조짐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세계 통신 생태계가 또 한번 요동치는 것은 시간문제다.

 우리도 서둘러 통신요금 체계부터 손질해야 한다. 음성·문자통신 위주에서 데이터 사용량 중심으로 요금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또한 통신시장에 과감하게 경쟁을 불어넣어야 한다. 방통위의 행정지도가 아니라 다른 선진국들처럼 통신업체들 간의 경쟁적인 요금 인하를 통해 사회적 후생이 극대화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망 중립성 강화와 MVNO 활성화는 당연히 해야 할 조치다. 당장 통신요금 절약의 최선책은 선불요금제 확산이다. 선진국들은 시장의 절반이 값싼 선불요금제인데, 우리는 그 비중이 2% 정도다. 복잡한 가입절차를 요구하는 데다 휴대전화 유통구조가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통신업계의 미래 투자여력은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와 통신업계의 관계가 마치 ‘제 식구 챙기기’처럼 비쳤던 게 사실이다. 이대로 가면 ‘반(反)통신업체’ 정서만 부추길 뿐이다. 원가 공개 소송은 이런 사회적 불만이 터져나오는 불길한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 이런 분위기를 되돌리려면 통신업계가 ‘가입자 빼앗기’의 과당 경쟁부터 자제해야 한다. 또한 ‘주파수 공용제’와 통신설비 공동 활용 등으로 과잉·중복투자를 막아 통신요금 인하로 되돌려주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