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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감사 받겠다" 한노총, 간부들 재산도 공개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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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이용득 위원장(오른쪽에서 둘째) 등 한국노총 지도부가 16일 사무총장 비리와 관련해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한국노총이 외부 감사제를 도입하고 중앙조직과 산별노조 간부의 재산을 공개키로 했다. 기금운용 비리 의혹 등 최근 잇따라 터지는 유형의 각종 비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노총은 16일 서울 청암동 사무실에서 산별노조 대표자와 지역본부장이 참석한 긴급 연석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자정대책을 발표했다.

노총은 앞으로 비리연루 의혹이 있는 노조원은 중앙조직과 산별노조의 임원이 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키로 했다.

노총은 또 중앙조직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산별노조가 노총에 내는 연맹비를 인상할 방침이다. 노총은 이날 조직혁신기획단을 구성하고 노총 중앙조직과 산별노조 간부의 재산 공개 방안 등 세부적인 자정대책을 이달 말까지 확정할 예정이다. 확정한 방안은 다음달 1일 열리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발표한다.

이용득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복지센터 발전기금 문제 등 조직 차원에서 밝힐 일이 있으면 검찰에 직접 출두해 조사받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총은 택시노련 위원장 시절 건설업자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권오만 사무총장의 직무를 정지했다. 노총은 권 사무총장에 대해 조속히 검찰에 출두하고 자진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정철근 기자

[뉴스 분석] 노동계 50년 고질 해결 하기에 미흡
재산공개 진위 검증 어려워

"이번 비리에 연루된 권오만 사무총장은 전국택시노련 위원장이 되기 전 이미 두 번이나 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된 전력이 있다. 그런데도 택시노련 위원장에 세 번이나 당선됐고 노총 중앙조직의 사무총장까지 올랐다. 이번에 노총의 개혁안은 이 같은 비리 연루 인물이 아예 간부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노총의 한 관계자는 16일 발표한 노총 조직 개혁방안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한국노총의 개혁안이 50여 년 계속돼 온 고질적 관행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노총의 이번 자정(自淨) 대책안의 골자는 ▶외부 회계 감사 도입▶비리 연루 간부의 임원 진출 봉쇄▶노총 재정 자립도 확보 등이다.

우선 외부 회계감사제는 산별 위원장 몇 사람이 내부적으로 점검하는 현 감사제도에 비해서는 분명 개선된 것이다. 그러나 외부 회계감사를 한다고 해서 조직의 투명성이 완전히 보장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노동부 관계자는 "외부감사를 받는 기업들이 분식회계를 하듯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차라리 일반 조합원이 노조 집행부의 판공비 등 구체적인 내역을 쉽게 볼 수 있도록 공개 기준을 만드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간부들의 재산 공개도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노총 관계자도 "공무원 재산 공개처럼 금감원이나 국세청의 협조를 받을 수 없어 개인이 공개한 재산 내역의 진위를 검증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개혁안에 산별연맹 위원장의 직선제 도입 등 노조 지배구조 개선이 빠져 있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한국노총 산별노조 위원장의 평균 재임기간은 6년 정도며 2명은 9년째 재직 중이다.

노총 간부 중에는 개별 기업의 노조 간부를 거쳐 지역과 산별노조의 간부, 중앙조직의 임원 등 20여 년을 노조 전임으로 지낸 경우가 많다. 이 간부들은 오랫동안 산별노조와 중앙조직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며 기득권을 누려 왔다. 이 때문에 한국노총 내부에선 이남순 위원장이 사퇴한 이후 산별노조 위원장과 노총 위원장을 직선제로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선거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직선제는 도입되지 않고 있다.

노조 개혁을 위해 지난해 출범한 시민단체 '노조 개혁과 민주주의 추진운동본부'는 "최근 비리는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조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없을 정도로 노조 간부의 힘이 막강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기아와 현대차 노조의 채용 비리는 대기업 노조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민주노총은 산하 사업장에서 비리가 잇따르자 내부비리 고발센터 운영과 비리 연루자의 임원 진출 배제 등을 내용으로 한 행동강령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여건에서 영향력이 큰 대기업노조를 민주노총 중앙조직이 감시.감독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조합원 수 1000명 이상인 대기업 노조는 전체 노조의 2.7%에 지나지 않지만 조합원 수는 전체의 61.6%를 점유하고 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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