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예술의 전당 파이프오르간 설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합창석 뒷편에는 '관계자외 출입금지' 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큰 방이 있다. 남부순환도로에서 음악당을 바라보았을 때 외벽에 혹처럼 둥글게 튀어나와 있는 부분이다.

1988년 개관 이래 14년째 비어 있는 이 공간은 설계 당시, 파이프오르간의 파이프와 송풍장치를 위해 마련해 둔 곳이다. 하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탁구 시설 등 직원들의 휴게 공간으로 사용돼왔다. 설계만 해놨을 뿐 정작 파이프오르간 설치를 위한 비용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자리가 제 목적에 쓰이게 됐다. 올해초 예술의전당이 "음악계 인사와 음향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구성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한 뒤 연내 사업자를 선정, 2003년까지 파이프오르간 설치공사를 완료할 것" 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음악계의 숙원사업중 하나가 풀리는 셈이다.

지금까지 파이프오르간이 갖춰진 연주공간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78년) 과 횃불선교센터(94년) 뿐이다. 성당.교회에 몇 대 있지만 규모도 작고 사용이 한정되어 있다. 게다가 세종문화회관도 다목적공간으로 만들어진데다 파이프오르간의 위치가 부적절해 활용 빈도가 낮다.

그러다보니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기기 일쑤였다. 예컨대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생상의 '교향곡 제3번' , 말러의 '교향곡 제2번' '교향곡 제8번' 등을 연주하려면 길건너 악기점에서 전기오르간을 빌려다 간이 스피커로 소리를 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것조차 대여료가 만만치 않아 프로그램에 넣으려다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몇해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한 정명훈씨가 생상의 '오르간 교향곡' 을 전기오르간으로 대신한 뒤 "한국 최고의 공연장에 파이프오르간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 이라고 화를 낸 적도 있었다.

이프오르간은 교향곡 뿐 아니라 바로크에서 현대에 이르는 오르간 독주곡, 헨델.힌데미트.풀랑의 오르간 협주곡 등 쓰임새가 생각보다 다양하다. 게다가 모차르트.포레의 '레퀴엠' 이나 헨델의 '메시아' , 멘델스존의 '엘리아' ,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 , 브루크너의 '테데움' , 코다이의 '미사 브레비스' , 바흐의 '마태 수난곡' , 페르골레지의 '슬픔에 잠긴 성모' 등 합창을 동반하는 종교음악 연주에서 파이프오르간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베를린필하모니홀.도쿄 산토리홀.보스턴 심포니홀 등 대부분의 심포니 전용홀에선 파이프오르간을 선택이 아닌, '필수악기' 로 여기고 있다.

'악기의 교황' 이라고도 불리는 파이프오르간이 종교음악을 위한 악기라는 생각은 오해다. 19~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파이프오르간의 새로운 음향적 가능성을 추구해 수많은 작품들을 발표해왔기 때문이다.

공연장의 시각적 상징물이기도 한 파이프오르간은 교향악단의 레퍼토리 확대는 물론이고 합창음악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음악적인 지평을 넓혀주는 효과를 가져온다. '레퀴엠' '미사' 등 대규모 합창음악의 경우 비싼 연주료를 지불해야 하는 오케스트라 반주 없이 1명의 오르가니스트로도 충분히 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오르가니스트협회 이사장 곽동순(연세대 종교음악과) 교수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오르간 연주에 매우 적합한 음향 조건을 갖췄다" 며 "공연장과 생명을 같이할 반영구적인 악기인 만큼 충분한 검토와 설계.제작과정을 거쳐야 한다" 고 말했다.

예술의전당이 구상 중인 파이프오르간의 전체 예산은 30억여원 규모. 파이프오르간 설치를 위해 확보해 놓은 기금은 5억여원이며 내년 10억원의 국고 보조금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