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자, 만성 시차부적응 뇌기능 감퇴 규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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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의 시간대(time zone)를 가로지르는 장거리 항공여행을 자주하면 뇌 특정 부위의 크기가 줄어들고 공간 인식능력 등 뇌기능이 저하된다는 사실을 영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 과학자가 처음으로 밝혀냈다.

영국 브리스톨대 의대 해부학과 조광욱(37) 교수는 과학전문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6월호에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고 장거리 비행을 자주하는 항공기 승무원은 측두엽 크기가 위축되고 공간 인식능력이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지난 1998년 영국 신경과학회 최고상을 수상하기도 한 조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는 장거리 항공여행으로 인한 시차부적응(jet lag)이 기억과 인식에 관련된 뇌 측두엽 크기를 위축시키고 인식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라고 말했다.

주로 `뇌의 인식능력과 기억력'' 분야를 연구해온 조 교수는 시차부적응의 영향을 밝히기 위해 비행 간격이 각각 5일과 14일인 2개 항공사 여승무원 10명씩(22-28세, 경력 5년 이상)을 대상으로 장거리 비행 후의 체내 호르몬(코르티솔) 수치와 뇌측두엽 크기, 인식능력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5일 간격으로 7개 시간대를 가로지르는 장거리 비행을 하는 그룹에서 코르티솔 수치가 비행 간격이 14일인 그룹에서보다 매우 높아졌고 자기공명영상장치(MRI)로 뇌 크기를 측정한 결과 오른쪽 측두엽 크기도 크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코르티솔은 성장 및 생체리듬 등 인체 신진대사에 중요 역할을 하는 호르몬으로 그 수치가 높아지면 신경독성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뇌의 측두엽은 인식능력과 기억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위이다.

또 이 두 그룹을 대상으로 물체 4개 중 검은 점이 찍혀 있는 것의 위치를 찾아버튼을 누르는 방법으로 공간 인식능력을 측정한 결과 비행간격이 5일인 그룹이 14일인 그룹보다 반응속도가 훨씬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조 교수는 "이 연구는 코르티솔 수치 상승이 만성화되면 측두엽 크기가 위축되고 공간학습 및 기억력이 저하됨을 보여준다"며 "코르티솔 상승이 측두엽의 해마체를 위축시키고 이에 따라 학습 및 기억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시차부적응으로 인한 이런 측두엽 위축과 뇌기능 감퇴가 일시적인 것인지 영구적인 손상인지, 그리고 일시적인 것이라면 이것이 회복되는데 시간이얼마나 필요한지 아직은 명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측두엽 위축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지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시차부적응의 장기적인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이번 연구대상자들이 은퇴한후의 변화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이주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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