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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벤처는 패키지 아닌 자유여행 … 100만원 월급에도 즐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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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직원 16명인 벤처기업 아블라컴퍼니는 지난 6월 인턴직원 100명을 뽑았다. 사진은 100인의 인턴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 [사진 아블라컴퍼니]

KAIST를 졸업하고 영국 킹스칼리지에서 석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엔 정보기술(IT) 분야 컨설팅 강자인 IBM을 거쳐 국내 최초의 교육 및 컨설팅 전문 특수법인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일했다. 어디에 내놓아도 밀리지 않을 이력의 소유자는 서숙연(27)씨다. 그는 올해 초 돌연 벤처기업 패스트트랙아시아에 합류했다.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소셜커머스업체인 티켓몬스터 창업자 신현성(27) 대표와 투자자들이 뭉쳐 만든 벤처 인큐베이팅 업체다.

 서씨가 내로라하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패스트트랙아시아에 둥지를 튼 건 권한과 자율성 때문이다. 채용 및 인사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온 서씨는 “올해 들어 2개 팀을 인큐베이팅하며 50명가량을 직접 채용했다”며 “전 직장에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 큰 권한을 가지고 엄청난 속도로 성과를 내며 일하고 있어 업무 역량 측면에선 크게 성장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되려는 젊은이들이 벤처기업을 직장으로 선택하고 있다. 안정적인 대기업에서 큰 프로젝트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것보다 막 시작하는 벤처기업에서 프로젝트 전체를 총괄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디지털 네이티브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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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기술을 모국어 쓰듯 익숙하게 다루는 세대 ‘디지털 네이티브’. 이 개념을 정립한 경영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돈 탭스콧은 이들의 특징으로 ▶자유를 원한다 ▶모든 것을 맞춤화·개인화한다 ▶자신이 쓰는 서비스와 상품을 철저히 조사하는 감시자다 ▶성실하고 투명한 기업을 원한다 ▶매사에 놀이와 즐거움을 추구한다 ▶협업과 관계를 중시한다 ▶빠른 속도를 좋아한다 ▶혁신을 주도한다 여덟 가지를 꼽았다.

서숙연

 최근 인증샷 전용 애플리케이션 ‘픽쏘’를 출시한 아블라컴퍼니는 지난 6월 픽쏘 마케팅을 담당할 인턴 직원 100명을 뽑는 실험을 했다. 직원 16명인 벤처기업에서 7배 규모의 인턴 직원을 뽑은 것이다.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300명 이상이 몰린 것이다. 아블라 이미나(41) 이사는 “급여도 없는 직책이었지만 직접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게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턴 김수지(23·고려대 중문과)씨는 “대기업에선 인턴을 위해 없는 일을 만든다면 벤처에선 정말 필요한 일을 맡겨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벤처기업이라고 장점만 있는 건 물론 아니다. ‘박봉’은 기회비용이다. 스마트폰을 통한 위치기반 중고거래 서비스를 제공하는 헬로마켓의 터크앤컴퍼니에는 미국 변호사, 서울대 초빙교수, 일본 최대 인터넷쇼핑몰 라쿠텐 소속 개발자들이 일하고 있다. 잘나가던 이들이 매월 받는 돈은 1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월세와 밥값, 월 1회 이발비 등을 기준으로 산정했다고 한다. 이 회사 한상협(38) 이사는 “실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성공하면 지분 등의 형태로 그만큼의 보상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결국 벤처는 미래에 대한 투자란 얘기다. 독특한 디자인 제품을 선별해 스마트폰을 통해 판매하는 벤처기업 엠버스의 정상용(25)씨는 민족사관고등학교를 나와 연세대에서 공부했다. 그는 “대기업에 갈 수도 있었겠지만 돈보다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일한 만큼 충분한 보상을 받고 싶었다”며 벤처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철규(55·벤처전문기술학) 건국대 교수는 “대기업에 입사해도 40대 이후까지 남아있기 어렵다는 걸 이들 세대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며 “어디를 가도 불안정하다면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기술·역량을 쌓을 수 있는 벤처기업을 선택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기성세대가 이직을 부정적으로 보는 반면, 디지털 네이티브는 적절한 타이밍에 좋은 회사로 이직하는 것을 ‘능력’으로 평가한다. 이런 문화 역시 이들을 벤처로 이끄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이지상 기자

디지털 네이티브 디지털 기술을 모국어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세대를 뜻한다. PC가 대중화된 1980년대와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일반화된 90년대에 성장기를 보내 과거 세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소통한다. 경영학자이자 미래학자인 돈 탭스콧이 정립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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