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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 잃은 자산시장 … 갈 곳 잃은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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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회사원 김모(39)씨는 맞벌이 부부인데도 요즘 여윳돈이 거의 없다. 집을 두 채나 갖고 있지만 재개발 지분이어서 거주가 불가능하고, 팔려고 내놓은 지 1년이 넘었지만 전화 한 통 받지 못했다. 올해 말 만기가 돌아오는 전세금 마련에 보탤 요량으로 올 초 주식 투자를 했지만 15%가량 손실만 입었다. 김씨는 “전세금을 올려주려면 결국 연말에 대출을 받아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국내 자산시장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부동산과 주식은 가치가 떨어진 데다 거래도 급감했다. 이 때문에 자산 디플레이션에 따른 ‘역(逆)부의 효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29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서울의 7월 아파트값은 금융위기 전인 2008년 6월보다 10% 하락했다. 전국 아파트 분양가는 금융위기 직전의 71.3% 수준이다. 한국 가계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7%( 지난해 기준)에 달한다. 그만큼 부동산 가격은 가계 소비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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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엔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 주식시장은 상대적으로 좋아졌다. 하지만 요즘엔 주식시장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시장 시가총액은 지난해 5월에 비해 150조원이 줄었다. 하락한 자산 가치는 곧 회복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럽 재정위기의 근본 해결은 요원하고 침체된 세계 경기의 반등 조짐도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주식의 가치만 떨어진 게 아니다. 거래도 급감했다. 지난해 7월에는 7만2800호의 주택이 매매됐다. 하지만 올 7월에는 이 수치가 5만6700호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주식거래 대금은 143조원에서 90조원으로 뚝 떨어졌다. 주식형 펀드에서도 돈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지난달 30일부터 24일까지 19일 연속 1조7462억원이 유출됐다.

 이렇게 시장이 빈사상태에 빠지니 부동산이나 주식에는 아예 돈을 넣지 않으려는 투자 심리가 확산하고 있다. 수익률이 낮아도 예금이나 채권에만 매달린다. 6월 말 기준 수시입출식예금 등 단기 부동자금은 650조원으로 지난해 말(647조원)보다 3조원 늘었다.

 이에 따라 민간 소비가 더 위축되는 ‘역부의 효과’ 우려가 크다. 소비자가 갖고 있는 부동산이나 주식의 가치가 떨어지면 스스로 가난해졌다고 판단해 씀씀이를 줄이는 것이다. 안 그래도 세계적인 불황이 덮쳤는데 소비 위축이 심해지면 경기침체가 가속화, 장기화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올 2분기의 민간소비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1.2%로, 1분기의 1.6%보다 하락했다. 국내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전년 동월 대비 매출은 올해 4월 이후 내리 줄었다. 게다가 4월 -2.4%에서 7월 -8.2%(대형마트 기준)로 감소 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가계 부채가 많아 적절한 정책 대응이 없으면 이번 경기 하강은 위험하고 길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재승 KB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자산 디플레이션은 과거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며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일부 안전자산 선호가 있지만 실물경제로의 신용 공급은 안정적이어서 국내 경제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부(富)의 효과 (Wealth Effect) 주가나 땅값이 오르는 등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 개인이 소비를 늘리는 현상을 뜻한다. 반대로 주가나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 개인의 소비 심리와 여력이 위축되는 경우를 ‘역(逆) 부의 효과’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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