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산책]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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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프랑스의 주당 35시간 노동제가 일단 합격점을 받았다.

프랑스 노동부가 지난 1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제도를 적용한 사업장의 노동자 다섯명 중 세명(59%)이 "근무시간 단축 후 '삶의 질' 이 높아졌다" 고 평가했다.

35시간제가 도입된 지 1년여만에 처음으로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 "삶의 질이 오히려 악화됐다" 고 대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13%에 불과했다. 근로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79%가 임금이 줄지 않았다고 응답했으며 17%만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임금은 줄지 않고 여가는 늘었으니 노동자들이 만족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나라 경제는 어떻게 됐을까. 놀랍게도 35시간 노동제는 프랑스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가 실시한 또다른 조사 결과, 이 제도는 프랑스 국민의 소비를 촉진해 경기부양에 일조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에 따르면 프랑스인 세명 중 두명이 35시간제에 따라 추가로 얻은 여가시간의 일부를 쇼핑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책이나 CD.영화 등 문화상품, 가구나 집수리를 위한 물품 구입은 물론 여행.스포츠 등을 위한 소비가 크게 늘었다.

특히 라파예트 백화점의 경우 3월 한달 동안 여름 의복 판매량이 전년에 비해 10% 가까이 늘어나는 이례적인 증가율을 기록했으며 프랑스 전체의 자동차 판매량도 3%나 증가했다.

이와 함께 35시간제 실시로 10%에 가깝던 실업률이 8.7%로 떨어져 구매가능 인구를 늘린 것도 소비증가의 한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같은 소비증가는 세계경제의 하락세 여파로 소비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주변 유럽국가들과는 상반되는 프랑스만의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프랑스의 기적' 이라고 평가되는 성장세 지속의 견인차로 활발한 국내소비를 꼽고 있으며 35시간제가 여기에 한몫했다는 데도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소비 증가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은 유로권 평균인 2.6%의 절반 수준인 1.4%(3월)에 머무른 것도 35시간제 덕분으로 분석된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임금인상이 억제돼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총통화량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소리다.

유럽사회의 특이한 현상으로 이해됐던 노동시간 단축이 이젠 경제 안정의 견인차가 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훈범 특파원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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