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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읍·김성기 '사랑은…' 더블 캐스팅

중앙일보

입력

날카로움과 강인한 인상으로 첫눈에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남경읍씨(44) , 처진 눈꼬리와 어깨, 약간은 어리숙해보이는 김성기씨(36) .

외모부터가 정반대인 두 뮤지컬배우가 같은 배역에 도전했다. 1995년 초연돼 국내 살롱뮤지컬 붐을 일으킨 '사랑은 비를 타고' (오은희 작.연출 배해일.최귀섭 작곡) . 초연당시 남우주연과 작품상 등 한국 뮤지컬 대상 4개 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다. 두 사람이 맡게된 배역은 맏형 동욱역.

"초연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출연한 경읍이 형님과 연기한다는게 처음엔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익숙치 않은 피아노 연주도 해야 하고. 옛날에 보신 분들 중에는 간혹 형님이 출연하느냐고 확인하고 오는 경우도 있나봐요. 이 작품을 오늘날 여기까지 만들어놓으신 분이죠. " (김성기)

"성기의 장점은 자연스러운 연기예요. 자연스러운 연기가 배우의 목표 아닙니까. 오죽했으면 스타니슬라브스키가 '연기의 가장 큰 적은 연기다' 라고 했겠어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으니 노래는 말할 것도 없구요. " (남경읍)

같은 노래, 같은 대사지만 두 사람이 만드는 무대는 외모 만큼이나 다르다.

남씨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는 강하면서도 섬세한 형의 이미지를 표현했다면 김씨는 자상하고 여린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실제로 그간 70여개 작품에 주연급 배우로 출연해온 남씨와는 달리 김씨는 13년간 줄곧 조연만 맡았다.

"대학졸업후 집안형편 때문에 유학은 생각도 못하고, 어딘가에 얽매이는 합창단 생활은 하기 싫어 우연히 알게 된 서울예술단에 입단했죠. 조연생활이 싫어 한동안 고향(평택) 에 내려가 포장마차를 차렸지만 무대위에서 느끼는 희열을 잊을 수가 없어 다시 돌아왔습니다. "

지난해 독일 연출가 디에트마 렌츠는 이런 김씨에게 딱 맞는 배역 하나를 선물했다.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대박' 중 흥부역이었다. 이 작품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김씨는 종종 "당신이 드라큘라에 나온 뮤지컬 스타 김성기냐" 는 질문을 받는다고 너스레를 떤다. 물론 그와는 동명이인.

'대박' 을 계기로 김씨는 지난 1월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가족오페라 '마술피리' 에서 파파게노역으로 남씨와 더블캐스팅되는 행운을 얻었다. 두 사람은 마이크 없이 오케스트라 소리를 뚫고 노래하는 재미도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모든 것이 새로운 김씨와는 달리 '사랑은…' 를 6백회 이상 공연한 남씨야 무슨 재미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6백번 넘게 무대에 서도 관객은 매번 바뀌잖아요. 오늘은 오케스트라의 피콜로처럼, 내일은 플루트처럼 조금씩 색깔을 바꿔 연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

김씨는 쉼없는 자기개발과 연기감각이 남씨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추켜세우더니 다시 공연얘기를 시작했다.

"형, 소극장 공연이 이렇게 힘든 건줄 몰랐어요. 관객 숨소리까지 들리는 거리에서 연기하려니 손발이 떨려서 첫공연때는 초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니까요. " 서울예술단에서 큰 무대에만 익숙한 김씨의 엄살이다.

"소극장 공연 하다가 대극장 가면 안방처럼 편하지 뭐. 그래서 배우는 소극장에서 훈련을 해봐야하는 거야. " 제법 선생님 같은 말투지만 후배에 대한 진한 애정이 느껴진다.

두 사람이 꾸미는 뮤지컬 '사랑은…' 은 7월1일까지 계속된다. 정보소극장. 02-552-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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