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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마·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5호 31면

세상사에는 변화와 반전이 있다. 개인이나 기업, 국가 모두가 흥망성쇠라는 보이지 않는 법칙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부자가 3대(代)를 넘기기 어렵다고 한다. 1965년 매출액 기준 100대 기업 중 2008년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12개에 불과하다. 삼성이 어제는 소니를 제치고 오늘은 노키아를 앞질렀지만 내일은 어느 다른 기업이 삼성을 뛰어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역사상 대제국이라 불렸던 국가 중에서도 그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대영제국은 아직 자존심을 지켜나가고 있으나 로마제국의 영화는 대부분 유적으로 남아 있다. 13세기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었던 몽골제국은 나라마저 둘로 갈라진 아시아 변방의 소국으로 추락했다.

국가 관계에서도 반전의 사례는 많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서 가장 큰 외교현안은 멕시코인의 불법이주 문제다. 그러나 1820년대 많은 미국인은 당시 멕시코령이던 텍사스에 이주하려고 멕시코 정부에 이민신청을 했다. 1830년대 초에는 2만6000명에 달하는 미국인이 텍사스로 이주했으며 멕시코 관계법령에 따라 새 정착민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심지어 이름마저 스페인어 식으로 바꾸어야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돔식 종합 실내경기장인 장충체육관은 1963년 우리보다 훨씬 잘살던 필리핀의 건설회사가 지었다고 한다. 요즘 필리핀은 우리로부터 가장 많은 경제원조를 받는 국가 중 하나다. 한국이 전후 복구사업에 참여 중인 이라크는 한국전쟁 뒤 우리의 재건사업을 지원한 나라였다.

개혁·개방 초기인 1980년대 중국에 간 한국인들은 무엇보다도 화장실 사정이 너무나 열악한 데 놀라고 피폐한 경제사정을 보며 그간 우리가 이룩한 경제적 성취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불과 200여 년 전 연암 박지원은 자신의 청나라 기행문인 '열하일기'에서 당시 중국의 변소를 깨끗하다고 찬미했다. 또한 압록강을 건너자마자 중국의 화려하고 번화한 도시 모습에 기가 죽어 북경까지 가고 싶은 생각이 절로 사라질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한다. 아직도 중국 대륙의 화장실이 전체적으로 청결하다곤 볼 수 없지만 경제발전에 따라 화장실 사정이 개선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지난 수천 년간 흥망성쇠가 반복되면서도 과거의 영토를 유지하고 있는 제국으론 동서고금에서 중국이 유일하다. 오히려 정치적 부침에도 불구하고 영토는 계속 확장되었다. 따지고 보면 수천 년간 우리는 중국과 이웃하면서 지금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중국보다 확실히 더 잘살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1950년대 한국은 한국전쟁, 중국은 대약진운동의 여파로 나라 경제가 똑같이 파탄 났다. 이후 양국은 상이한 길을 걷는다. 중국은 문화혁명이라는 퇴보의 길로 접어들고 한국은 경제개발과 새마을운동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다. 이것이 현재 양국 경제 수준의 차이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그런 중국이 지금은 엄청나게 달라지고 있다. 에너지(E)는 질량(M)에 속도(C)의 제곱을 곱하면 된다. 이 공식을 국가에 비유하면 에너지는 국력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이 무거운 질량의 나라라면 한국은 속도의 나라다. 그런데 요즘엔 중국이 속도에서마저 한국을 위협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양적인 국력이 아니라 질적인 면을 포함한 종합적인 국력을 계산하려면 기존의 질량과 속도에다가 그 나라의 핵심가치(V)를 추가로 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우리의 핵심가치야말로 ‘근면·자조·협동’이라는 새마을정신이다. 1970년대 농촌 근대화를 이룩한 정신적 기초이자 국가발전과 위기극복 과정에서 수차례 검증된 우리만의 자산이다. 유럽발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어려워진다 해도 우리가 풀어나갈 방법과 역량은 바로 우리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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