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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미움으로 바뀔 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5호 28면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사랑이란 감정만큼 드라마틱한 것도 없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자기들 두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것들은 배경으로 물러나는 특이한 경험을 겪는다. 프로이트가 말했던 것처럼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일종의 과대평가의 감정을 수반한다. 한마디로 말해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에는 상대방이 일종의 유일신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소중하다고 생각해 왔던 부모님·친구, 심지어 조국마저도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눈에는 들어올 리 없다. 그렇다. 사랑은 두 사람을 이 지상, 아니 이 우주에서 유일한 주인공으로 만드는 감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이 언제 우리를 떠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 하나를 얻게 된다. 상대방이 더 이상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비교 가능한 사람이 되는 순간이다.

강신주의 감정 수업 <18> 멸시

한때는 주인공이었던 사람이 이제 익숙한 풍경처럼 평범해지며 배경으로 물러나는 경험이라고나 할까? 이럴 때 불행히도 우리는 자신이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이별을 준비해야만 한다. 언젠가 그 사람에게 말해야만 하니까. “이제 당신은 더 이상 제 삶의 주인공이 아니에요.”

그 사람과 함께했던 사랑의 기쁨을 추억으로나마 간직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별의 아픔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지내다 보면 사랑의 추억마저도 갈기갈기 찢어질 테니까.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사랑하지 않음에도 이별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이별하려고 해도 이별할 수 없을 때 우리의 사랑은 낮이 밤으로, 봄이 겨울로 변하는 것처럼 완전히 상반되는 감정으로 돌변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미움이란 감정이다.사랑이 미움으로 변할 때 사랑에 수반되던 ‘과대평가’의 감정은 이제 ‘멸시’의 감정으로 변하게 된다. 과대평가가 상대방을 이 세상의 유일한 주인공으로 만들었던 감정이라면, 멸시는 상대방을 평범한 사람보다 못한 사람, 한마디로 벌레처럼 무가치한 사람으로 만드는 감정이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멸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던 것이다.

“멸시(Despectus)란 미움 때문에 어떤 사람에 대해 정당한 것 이하로 느끼는 것이다.”
(-에티카』중에서)
여기서는 “미움 때문에”라는 구절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밉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에게 그가 받아 마땅한 정당한 대우를 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멸시다. 미국의 위대한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라는 희곡에서 탐색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 멸시라는 감정이다. 이 작품을 끌고 나가는 것은 대학 설립자의 딸이기도 한 아내 마사와 같은 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남편 조지가 서로의 상처를 후벼 파듯 상대방을 멸시하는 대사들이다.
조지: (몸을 돌리며) 그만해 둬, 마사….

마사: 역사학과의 막장….
조지: 그만, 마사, 그만….
마사: (조지의 목소리에 지지 않으려고 언성을 높이며) 총장 딸과 결혼해 한가락 할 줄 알았는데, 무명씨에다 책벌레…잡생각만 많고, 아무것도 되는 것 없고, 배짱은 없어서 누구에게도 자랑거리가 못 되고…됐어, 조지!

이 정도의 막말이라면 둘만 있을 때에도 상대에게 치명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마사는 남편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고 신임 교수로 부임한 닉과 허니 부부를 한밤중에 집으로 초대한 상태다. 이렇게 초면의 손님들 앞에서 마사는 남편에게 ‘배알’도 없는 ‘얼간이’라며 악담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멸시하고 또 멸시한다.

마사가 조지에게 홀딱 반했던 이유는 결코 조지가 총장이 될 인물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이 아니다. 조지 역시 총장이 되려고 마사를 사랑했던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은 그냥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비극적인 것은 두 사람에게서 사랑이 떠나갔을 때 그들이 헤어질 수 없었다는 점이다. 어쩌다 대학 설립자의 사위가 된 역사학과 교수, 그리고 이혼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총장 딸이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아내. 사랑이 떠난 뒤 남은 현실은 그들의 이별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니 상대방이 미울 수밖에, 그러니 상대방을 멸시할 수밖에.
어쩌면 그들이 진정으로 멸시하고 있는 것은 그런 현실에 굴복하고 있는 자신들의 비겁함과 나약함이 아닐까?


대중철학자.『철학이 필요한 시간』『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상처받지 않을 권리』등 대중에게 다가가는 철학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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