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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눈 빌리는 한 한국은 지적 식민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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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하버마스가 한국을 다녀갔다. 온갖 학회가 하버마스를 모시지 못해 안달했다. 한 강연장에서 한 질문자는 하버마스에게 한국 인권운동의 전망을 질문했고, 이에 하버마스는 그 문제는 당사자 한국인들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을 떠나면서 그는 이제 한국인들도 서양철학에 대해서는 이해가 높아졌으니 불교나 유교 같은 전통사상에 눈을 돌려보라고 칭찬인지 꾸지람인지 모를 말을 남기고 갔다. "

신간 〈전통과 서구의 충돌〉은 철학에서 의학.음악.법체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10개 분야로 나누어 한국적 근대성(모더니티) 의 현주소를 주로 비판적 입장에서 점검하고 있다.

앞의 인용문은 고려대 이승환 교수의 글 〈황색 피부 하얀 가면-철학의 식민화〉의 앞부분.

이 글에서 이교수는 하버마스에게 던져진 질문들은 '자기 집에 비가 새는데 이를 찾아온 손님에게 묻는 식의 왕 코미디' 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개항, 광복 이후 한국의 지적 상황은 아직도 식민지성에 묶여있다는 말과 함께 "남의 눈과 사고를 빌려 세상을 보려는 자세를 벗어날 것" 을 제의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은 대부분 젊은층인 필자 10인 모두에게서 발견된다.

〈미술-서구화 지상주의의 환상〉을 쓴 평론가 최열씨 역시 "다음 세기 미술은 국수주의도, 서구 추종주의도 아닌 민족의 요구에서 비롯되는 힘에 의해 발현될 것" 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 책에는 이밖에도 〈우리 주거(住居) 는 죽었는가〉이일훈 후리건축사 대표) ,〈한의학과 서양근대의학의 만남〉(황상익 서울의대 교수) ,〈근대문명이라는 이름의 개신교〉(장석만 종교연구회 연구원) 등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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