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골프장 오거스타, 80년 만에 ‘금녀’빗장 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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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이 2011년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열린 프로암 대회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 [게티이미지=멀티비츠]
무어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이 ‘80년 금녀(禁女)의 벽’을 스스로 깨고 백기를 들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마스터스 개최지로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은 21일(한국시간) 콘돌리자 라이스(58) 전 미 국무장관과 투자회사 레인워터의 파트너인 금융인 달라 무어(58)를 새 회원으로 받아들였다고 발표했다. 오거스타가 1932년 개장한 이래 여성 회원 가입을 허락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클럽은 매년 4월이면 세계 4대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꿈의 무대’ 마스터스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지낸 빌리 페인(65)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회장은 이날 성명에서 “오늘은 아주 기쁜 날이다. 많은 업적을 이룬 두 분 여성과 골프에 대한 열정을 함께 나누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올 가을 클럽 개장 때 두 여성에게 그린재킷을 선사하는 시간은 자랑스러운 순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클럽의 이번 결정은 그동안 여성 회원에게도 문을 열라는 여성단체와 진보 진영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은 80년 전 골프의 명인인 보비 존스와 월스트리트의 자본가 클리퍼드 로버츠가 주도해 문을 열었다. 전 세계 골퍼들에게 꿈의 골프장으로 불렸다. 하지만 남성 전용 골프클럽 정책을 유지하며 단 한 명의 여성회원도 허락하지 않았다. 성(性) 차별주의란 비난을 내내 들어야 했다. 90년까지는 흑인의 회원 가입도 허용되지 않아 인종 차별 지적도 쏟아졌다.

 그런 논란과 비판에도 클럽은 회원수를 소수정예 300여 명으로 제한해 ‘남성들만의 사교모임’을 고수해왔다. 여성 골퍼들은 회원 초청으로 라운드를 할 순 있었지만 회원가입은 엄격하게 금지됐다. 2003년 여성 단체가 마스터스에서 피켓 시위까지 벌였지만 오거스타는 “우리는 당신들의 캐비닛에 올릴 전리품이 되지 않겠다”며 꿈쩍도 안 했다. 그러다 올해 마스터스 3대 후원사 중 하나인 IBM이 올 초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임명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IBM의 버지니아 로메티(53) 회장은 지난 4월 마스터스 외빈 환영식에 참석했지만 회원이 입는 그린재킷을 걸치진 못했다. 여성단체가 일어섰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등 언론까지 ‘성차별 클럽’이라고 비난했다. 결국 도도했던 오거스타 내셔널 클럽은 공개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첫 여성 회원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 라이스는 미국 최초의 흑인 여성 국무장관을 지냈고, 무어는 97년 여성사업가 최초로 ‘포춘’지 표지를 장식했다. 라이스(핸디캡 16)는 “오거스타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고, 무어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37·미국)는 “두 여성 회원에게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건넨다”며 “오거스타의 결정은 세계 골프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고 말했다.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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