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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개막 고다르 등 거장 집결

중앙일보

입력

지중해에 면한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칸에서 9일 개막한

제54회 칸영화제(http://www.festival-cannes.org)에서는 할리우드의 '융단폭격' 에 맞서 영화제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고민의 흔적이 엿보였다.

호주 출신의 바즈 루만 감독의 뮤지컬 영화 '물랑루즈' 를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개막작으로 선보이며 열이틀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최근 톰 크루즈와 이혼하며 화제가 됐던 니콜 키드먼은 여기에서 신분상승을 꿈꾸는 19세기 말의 뮤지컬 가수로 나와 관심의 초점이 됐다. 칸측은 실제 무용수만 1백여명이 나오는 화려한 영화 '물랑루즈' 로 분위기를 띄웠다.

올해 칸영화제는 '노장들은 살아 있다' 는 구호를 내세우려는 태세다. 그동안 칸을 거쳐간 거장을 한데 모았기 때문. 총 23편의 장편부문 경쟁작 가운데 절반 이상이 그간 칸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감독의 작품이다.

'작가주의 산실' 답게 세계 명장을 불러들인다는 칸의 자부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나, 다른 한편으론 그만큼 영화제의 활기가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된다.

포루트갈의 전설적 감독인 마누엘 드 올리비에라(93) 부터 프랑스의 장 뤼크 고다르(71) .자크 리베트(73) , 이탈리아의 에르마노 올미(70) ,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75) 까지 70대 이상 감독이 다섯명이나 된다.

특히 1960년대 할리우드에 저항하며 프랑스 누벨바그 운동을 주도했던 고다르와 리베트가 자웅을 겨뤄 눈길을 끈다. 고다르는 청년.중년.노년의 세 커플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캐는 '사랑의 송가' 를, 리베트는 여성 연극배우를 내세워 사랑의 정열과 비극을 해부한 '알게 되리라' 를 선보인다.

60년대 이탈리아 현실을 직시하며 네오 리얼리즘의 한복판에 섰던 올미는 전쟁과 인간사의 아둔함을 풍자한 '무기를 만드는 사람' 을, 올리비에라는 부인을 교통사고로 잃은 원로배우가 젊은 여배우와 사랑에 빠지는 '귀향' 을 공개한다. 여기에 일본영화계의 거목인 이마무라는 아내로부터 버림받은 40대 가장이 한 신비한 여인에 의해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는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강물' 로 세번째 황금종려상을 노린다.

미국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는 "칸이 지난 수십년의 세월에 잠겨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며 "영화 상영시간은 짧아졌지만 감독들은 노쇄해졌다" 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다. 대만의 명실상부한 대표 주자인 후샤오시엔(侯孝賢. '밀레니엄 맘보' ) , 칸 영화제의 단골인 미국의 조엘 코언( '거기에 없는 남자' ) 과 데이비드 린치( '멀홀랜드 드라이브' ) 등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자가 합세해 올 칸영화제는 그야말로 정상급 감독의 경연장 비슷한 모양새다.

또 지난해 '유레카' 로 칸에서 호평을 받았던 일본의 아오야마 신지(靑山眞治) 와 98년 '구멍' 을 선보였던 대만 감독 차이밍량(蔡明亮) 도 신작 '사막의 달' 과 '그곳은 지금 몇시□' 를 들고 칸을 다시 찾았다.

칸영화제측은 할리우드를 의식하듯 미국 작품과, 최근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던 아시아 영화를 각각 다섯편씩 초청하며 지역간 안배에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패기 있는 신진감독의 작품은 들어갈 틈이 거의 없다.

작가들의 명성에 의존해 영화제를 안정적으로 꾸려가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또 30~40년대 미국 무성 코미디영화 회고전을 대규모로 여는 등 할리우드와 관계 개선에도 많은 무게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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