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경기장 이름 `촌티` 안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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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럽지만 내 이름 얘기부터 하자. 외국에 나갈 때마다 이름 소개하기가 보통 일이 아니다. '장환손' . 세 글자에 모두 받침이 있다보니 외국인들이 발음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다시 한번 확인하거나 그냥 얼버무리기 일쑤다. 더구나 'JANG' 은 지역에 따라 '장' 이 되기도 하고 '양' 이 되기도 하고 '항' 이 되기도 한다.

긴 장(長) 에 빛날 환(煥) , 뜻으로만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름이지만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기엔 '꽝' 이다.

요즘 젊은 부모들은 뜻보다는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짓고, 외국인들을 많이 상대하는 사람들은 명함에 원래 이름과 부르기 쉬운 미국식 이름 두 가지를 적어놓은 지 오래다. 시대의 흐름에 잘 적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완전 '꽝' 인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더구나 그것이 전세계 60억 인구가 모두 지켜보는 월드컵 경기장의 이름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서울에 짓고 있는 월드컵 경기장 이름은 '상암 경기장' 이 아니다. 그건 그냥 상암동에다 짓기 때문에 언론에서 편의상 붙인 이름이다.

정식 이름은 '서울 월드컵 경기장' 이다. 영어로는 'Seoul World Cup Stadium' 이다. 서울만 그런가. 아니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대전 월드컵 경기장.전주 월드컵 경기장.광주 월드컵 경기장.제주 월드컵 경기장. 10개 경기장 중 절반이 넘는 6개가 지역이름만 갖다붙인 천편일률적인 이름이다. 나머지 경기장은 좀 나은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차별이 된다는 인천 문학경기장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도 그냥 그 주변(문학산과 문수산) 이름을 하나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 대구종합경기장과 부산종합운동장은 축구전용구장이 아니라 유니버시아드와 아시안게임을 치르는 경기장이기 때문에 종합운동장이다.

월드컵을 계기로 전세계에 자기 도시의 이름을 알리는 데는 더 이상 좋은 기회가 없겠지만 뭔가 허전하다. 과연 그 이름이 제대로 알려지겠는가 신경이라도 썼을까.

부산의 경우를 한번 들어보자. 영어 이름은 'Pusan Sports Complex Main Stadium' 이다. 외신기자들이 기사를 쓰면서 과연 이 긴 이름을 다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이름은 그 사람의 첫 인상을 결정한다. 복잡하고 부르기 힘든 이름은 기억하기도 싫다. 어떤 이름을 짓느냐에 따라 회사의 흥망이 걸려 있기도 하고, 히트상품이 결정되고, 드라마나 영화의 흥행도 좌지우지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본다.

일본의 경우를 비교하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알 건 알자. 일본도 사실 우리와 크게 다를 것은 없다. 공식 이름은 똑같이 지역 이름이다. 그러나 애칭에서 국제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니가타 스타디움의 애칭은 '빅 스완' (큰 백조) 이다. 보지 않아도 경기장의 모습이 마치 날개를 편 백조 같을 것이란 상상을 할 수 있다. 미야기 스타디움의 애칭은 '그랑디 21' , 삿포로 돔의 애칭은 '히로바' 다.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서울 스타디움은 멋진 방패연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국 전통을 잘 살린,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경기장이다. 서귀포에 짓고 있는 제주 경기장은 제주 전통 돛단배 형태로 관중석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축구장이다. 뭔가 멋진 이름이 나올 것 같지 않은가.

전문가에게 의뢰도 하고 공모도 하자. 그래서 월드컵을 통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함께 널리 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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