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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선 지방병원, 국가 의료시스템 위협한다' ②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지방 병원은 2류 아닌가요? 이왕이면 일류에서 치료 받고 싶어요”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한양으로 보낸다’는 옛말에 요즘엔 하나 더 보태야 할 게 있다. 바로 ‘아픈 사람도 서울로 보낸다’는 말이다. 지방 환자의 서울 병원 쏠림 현상은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갈수록 증가세가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족 중 환자가 있으면 일단 서울 유명 병원과 명의를 찾는 게 당연시됐다. 지방에 뿌리를 둔 대학병원도 서울에 있는 병원 앞에서는 2류 병원 취급을 받는다. 연세대원주의과대학 김춘배 교수는 “원주기독병원만 해도 암으로 진단 받은 환자의 50% 이상이 다시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떠난다”고 말했다.

지방 거주 환자들은 왜 지방병원을 외면하는 것일까. 김춘배 교수는 “지방에 있는 병원은 2류, 서울에 있는 병원은 1류라는 막연한 생각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을 선호하는 한국 사람만의 정서, 문화적인 의료 이용행태가 지방병원을 외면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의료의 질 차이, 명의 선호, 접근성 등 복잡한 이유가 있다. 중앙일보헬스미디어는 ‘벼랑에 선 지방병원, 국가 의료시스템 위협한다’를 기획 연재한다. 두 번째 주제는 ‘지방 환자는 왜 지방 병원을 떠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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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유명 S대학병원에서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정성훈 씨(59․가명․광주광역시). 지방의 대학병원에서 전립선암 초기라는 진단을 받은 뒤 정씨와 가족은 어느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지를 놓고 다툼까지 벌였다. 서울에서 살고 있는 두 딸은 서울 유명 대학병원을 고집했다. 지방병원이 아무리 잘해도 서울에 비하면 이류, 삼류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내도 이왕이면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자고 제안했다. 아내는 “지방에서 수술을 받아서 0.1%라도 실수가 있어 잘못되면 어떻게 하냐.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고 고생을 해도 되니 서울로 가자”며 남편을 설득했다. 정씨의 생각은 달랐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라는 얘길 들었고, 번거롭게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결국 정씨는 가족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두 딸은 서울 유명 S대학병원 중에서도 명의라고 잘 알려진 의사를 지목했다. 네이버에 의사의 이름을 검색하자 ‘인물 검색’이란 창에 한 눈에 봐도 눈에 띄는 스펙들이 나열돼 있었다. 유명 언론사에서 명의라고 소개하는 인터뷰 기사도 눈에 띄었다. 결국 정씨는 S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입원기간 동안에도 정씨와 가족은 만족스러웠다. 병원 인테리어도 고급스러웠고 병원 의료진도 친절했다. 수술비는 약 700만 원 가량이 나왔다. 지역 병원에서 했다면 100~200만 원 가량 덜 들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보험 적용을 받아 별 부담이 없었다. 문병을 오는 친지와 동료들이 “따님을 잘 둔 덕에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에서 치료도 받고, 따님들이 효녀네요”라는 칭찬도 했다. 정씨는 수술 뒤에도 지방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이곳에서 계속 혈액 추적 검사를 받으며 치료를 받고 있다. KTX로 3시간이면 서울에 도착하니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말은 제주도로, 환자는 서울로’ 시대 이대로 괜찮나

보건사회연구원의 2011년 자료에 따르면 중병인 암환자 뿐 아니라 외래 환자의 서울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기준 서울지역의 종합병원에 찾은 지방 외래환자는 9.5%(2002년 기준)에서 39.4%로 늘었다. 지역별로 서울 종합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살펴보면 경기 지역 43.2%, 충북 40.8%, 강원 33.8%, 충남 32.5%, 경북 31% 등 전반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대구거주 환자가 서울로 올라와 외래진료를 받은 비율은 2002년 3.2%에서 2010년 기준 11.9%로, 울산은 8.2%에서 22.8%로 크게 늘었다. 서울과 가까운 충북지역도 마찬가지다. 2002년 33%에서 2010년 39.4%로 높은 외래율을 유지했다. 지방 거주 환자들은 왜 서울 병원을 찾았을까. 연세대 원주 의과대학 김춘배 교수는 서울 병원 쏠림 현상을 4가지 원인으로 지적했다.

첫째, ‘서울’이라는 지리적 요건 자체에 의미가 있다. 막연한 서울 선호 사상 때문이다. 무릎과 어깨에 심한 통증을 느꼈던 김선애(60)씨도 지방에 있는 유명 정형외과 연합의원을 두고도 서울 강남의 유명 관절병원에서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김씨는 “교육도, 산업도 서울이 최고니까 관절수술도 서울 의사가 더 잘할 것 같아서 서울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의료를 교육에 빗댄다. 서울 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현상이 일명 SKY 대학 선호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 ‘서울에 있으면 무조건 된다’는 것이다. 전북대 사회학과 강준만 교수는 저서『지방은 식민지다』에서 ‘수도권 대학의 경쟁력은 어느 순간 지리적 위치가 달라지면 곧 상실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가 전라남도로 이전한다면 그간 축적해 온 서울대 파워로 한 동안 서울대에 학생이 많이 몰리겠지만 비슷한 조건에서는 서울 연고대를 택할 학생이 크게 늘 것이라는 것이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서울에서 하면 ‘최고’라는 생각이 오랜 기간 교육·산업 등에 녹아들어 환자들이 병원도 서울이 최고라는 막연한 정서가 뿌리 깊다”고 말했다.

서울 선호 사상 때문에 부모가 아프면 서울로 모시고 가야 자식들도 불효자가 되지 않는다. 큰 병을 앓고 있는데 지방 병원에 모시면 제대로 모시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 메디시티를 표방하며 첨단의료복합단지를 유치해 온 김범일 대구 광역시장도 서울로 이탈하는 환자를 막을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 대한 막연한 선호 사상이)환자 본인의 생각 뿐 아니라 자식의 효심과 주변 여건이 함께 맞물려 서울 병원 쏠림 현상을 만들어 낸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두 달에 한 번씩 고혈압 치료를 받는 박철환(50․가명)씨도 “지방병원에서도 같은 약을 처방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왠지 서울 병원에서 지어 주는 고혈압 약이 더 잘 듣는 것 같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더 신경을 써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김 춘배 교수는 “김씨가 먹는 고혈압 약은 서울 대학병원에서 처방 받던 중소병원에서 처방 받던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어 “분명 의료의 질이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만성질환이나 초기 단계 암 수술이라면 서울과 지방 병원간의 차이가 적다”고 말했다. 질 차이가 없는 치료의 경우에도 막연한 생각으로 지방 병원을 외면한다는 것.

이러한 현상에 대해 황라일 박사는 “의료의 질에 따른 서울 병원 쏠림 현상은 대형 의료기관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며 “실제 의료 이용자들의 의료기관 선호도나 각 의료기관의 질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로 지방 환자들이 제대로 알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둘째 의료의 질 차이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 황라일 박사는 “환자들이 지방보다 서울의 의료자원을 이용하려는 욕구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런 생각의 배경에는 서울과 지방간의 의료 격차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실제 서울의 대형병원은 고가 또는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 있다. 규모의 경쟁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풍부한 의료자원은 지방의 환자들을 끌어올리는데 크게 기여(?)한다.

서울 유명 S병원에서 전립선암 치료를 받은 정씨의 가족은 “서울과 지방의 암 수술 격차는 10년 이상 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남 지역에선 전립선암 치료를 위한 로봇수술이 2010년에야 비로소 들어왔다. 그런데 서울 대부분의 대형병원에는 로봇수술 장비가 갖춰져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방 환자들은 첨단장비의 혜택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의료비와 시간을 지불하면서까지 서울 병원을 찾게 된다는 것.

위암 2기로 서울에서 위의 3분의 2를 절제했던 이정숙(52)씨는 수술 뒤 연고지로 돌아가 항암 치료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집 근처 병원에서는 의료기기가 갖춰지지 않아 항암주사제 투약은 가능하지만 방사선 치료는 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방사선 치료 없이 항암주사 투여만으로 항암치료가 가능할지 방사선 치료를 꼭 받아야 할지 고민이 됐다. 결국 서울에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

셋째 명의 때문이다. 대부분의 지방환자들은 병원 뿐 아니라 경험 있는 명의를 선호한다. 명의라고 알려진 의사들은 대부분이 서울의 대학병원에 몰려 있다. 김 교수는 “명의 현상을 부추긴 건 언론의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수도권에 뿌리를 둔 언론이 명의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 유명대학 교수라는 것. 김 교수는 “지역의 숨은 의사를 발굴해 지역 사회 구성원에게 소개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매년 수많은 의사들이 서울 소재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사명감을 심어준다면 지방 이탈을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넷째 접근성 때문이다. 영남선․호남선 등 KTX가 생기면서 서울로 가는 시간이 1~4시간으로 크게 줄었다. 5만 원 이하로 이용할 수 있는 저가 항공도 한 몫 했다. 김 교수는 “우리 나라는 1일 생활권인데 최근엔 교통이 더 편리해지면서 쉽게 서울 병원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병원 쏠림 부작용 만만치 않아, 신종병원까지 등장해

서울 병원 쏠림 현상은 단기적으로 보면 지방환자에게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비용 증가가 대표적이다.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에서 암 수술을 받으면 대부분 1~2주 마다 방사선 치료 또는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기 위해 다시 서울을 찾아야 한다. 서울에 친지나 가족이 있으면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병원 대기실 소파에서 밤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소아암 등 일부 암에 대해서는 환자 숙소를 마련해주는 병원도 있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제주 의대 박형근 교수는 “대형병원의 환자 집중은 병원 간 양극화를 심화시켜 환자의 비용부담을 늘게 한다”고 설명했다. 병원비 뿐 아니라 교통비와 간병비, 숙박비, 가족들의 경비까지 포함하면 환자의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병실 포화와 숙박 시설 부족으로 신종병원도 등장해 지방 환자를 흡수한다. ‘되의뢰병원’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췌장암 수술을 받은 김성국(57․가명)씨는 6개월간의 방사선 치료를 앞두고 있다. 거주지인 포항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으려고 했지만 가족과 논의 끝에 수술을 받은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대학병원에서 입원을 연장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대학병원 근처에 방사선이나 항암치료를 하러 오는 환자가 입원할 수 있는 되의뢰병원을 찾았다. 방사선 치료는 원래 치료를 받던 대학병원에서 받고 되의뢰병원에서는 최소한의 치료만 받는다.

이처럼 되의뢰병원은 대형병원이 환자의 입원 치료를 다시 의뢰하는 병원이다. 비용 부담과 입원일수 제한 때문에 계속해서 대학병원에 있기 어려운 암환자가 김씨처럼 협력병원이라는 이름으로 대형병원의 소개를 받아 찾는다.

실제 진료는 대형병원에서 받기 때문에 중복 처방을 피하기 위해서 되의뢰병원에서는 진료를 거의 받지 않고 숙박 공간처럼 쓰는 경우도 많다. 지방 환자의 편의를 위해 생겼지만 편법이 동원되면서 보험사기에 악용돼 문제로 지적된다. 김 교수는 “서울병원 쏠림 현상이 만들어 낸 부작용”이라며 “서울 쏠림 현상이 지속되면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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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선 기자 charity19@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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