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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디아블로2…국내 게임시장 판도 바꾼다

중앙일보

입력

먹이를 본 짐승마냥 거대한 칼을 한 손에 들고 달려오는 한 떼의 무시무시한 발록(Balrog) 무리를 발견한 것은 불길의 강(River of Flame)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곧 이어 쓰러진 동료의 시체를 먹고 그것을 토해 공격하는 커플런트(Corpulent)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이놈은 길고 뾰족하게 생긴 촉수로 바닥에 있는 동료의 시체를 빨아먹은 다음 그걸 되뱉어서 공격하는 역겨운 놈이다.

발록과 커플런트의 등장을 알아챔과 동시에 이번엔 강력한 파이어 볼과 포이즌 마법이 멀리서 함께 날아왔다. 마법 저항력이 그리 높지 않은 캐릭터라면 순식간에 즉사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공격이다. 이렇게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어비스 나이트(Abyss Knight) 뿐이다. 발록과 커플런트, 그리고 어비스 나이트의 원거리 마법 공격.

땅에서는 용암이 끓고 하늘에서는 불길이 솟고 있는 이 불길의 강 좁은 길목에서 몬스터에게 포위당한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길은 단 하나. 모조리 죽여야만 한다. 그들의 시체를 밟고 지나가야 한다.

나는 레벨 84의 콜드 파이어 혼합 소서리스(VERSUS-SOR).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마법사다. 수십 개의 얼음 파편을 날려 적을 공격하는 프로즌 오브,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파이어 월, 적의 체력을 날려버리는 스태틱 필드 등 3가지 마법을 이미 마스터했다. 머리 위에 띄워진 작은 구슬 마나 쉴드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마법이다.

현재 총 8명으로 이루어진 우리 파티원들은 하나 하나가 모두 일당백이다. 가장 먼저 발록을 발견한 레벨 87의 랜스 바바가 앞으로 달려나가 훨 윈드로 칼춤을 춘다. 순식간에 4마리의 발록이 그 자리에서 산화했다. 커플런트는 강력한 해머 공격을 하는 팔라딘이 맡고 있었다. 하늘에서 회전하는 수많은 성스러운 망치들이 커플런트의 몸을 조각 냈다. 갈기갈기 찢긴 그 놈 몸 속에서 아까 빨아먹은 동료의 시체가 튀어나온다. 뒤쪽에서는 계속해서 수십 개의 화살이 날아오고 있다. 후방 지원을 맡은 아마존의 강력한 멀티 샷이다. 하나하나의 화살에 엄청난 파괴력이 실린 스킬이다. 어비스 나이트 한 놈이 그 중 하나에 머리를 관통 당하고 그대로 널부러졌다.

나는 스태틱 필드 마법으로 계속해서 적의 체력을 깎았다. 화면 전체의 범위를 가진 스태틱 필드로 인해 모든 몬스터들의 몸에 전기 공격이 가해졌다. 곧 이어 프로즌 오브가 뿌리는 수십 개의 아이스 볼트가 화면을 가득 메우며 몬스터들의 몸에 꽂혔고 파이어 월의 강력한 불길이 시체조차 남지않게 모조리 태워버렸다.

몬스터들에 대한 ‘사냥’이 어느 정도 끝나갈 무렵 아이언 메이든으로 후방을 보조하던 네크로맨서가 달려 나와 적들의 시체를 향해 ‘리바이브’ 마법을 사용했다. 네크로맨서가 사용한 ‘리바이브’ 마법은 몬스터의 죽은 시체를 되살려 아군으로 만드는 마법이다. 이제 불길의 강을 넘어 성당에 도착하면 우리는 지옥의 마왕 디아블로를 또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순식간에 수천마리 몬스터 사냥

1996년, 이전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방식의 RPG 게임이 등장했다. ‘디아블로’를 처음 접해본 사람들의 첫 반응은 황당함이었다.

위저드리와 울티마에 익숙해져 있던 게이머들에게 디아블로는 마치 액션 게임처럼 보였다. 디아블로에는 복잡한 퀘스트도 없었으며 인물과의 대화도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해야 할 일은 수많은 던전을 헤매며 벌떼처럼 몰려드는 무시무시한 몬스터를 죽이는 일뿐이었다. 기존의 정통 RPG에서 몬스터 한 마리를 잡는데 몇 분에서 몇 십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과는 달리 디아블로에서는 순식간에 수백 수천 마리의 몬스터를 사냥한다. 액션 게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원하는 클래스를 선택해 끊임없이 시체의 산을 쌓는다. 끝없이 흩날리는 몬스터의 피와 소름끼치는 배경음악, 비명소리, 묘한 게임 속 분위기가 서로 맞물려 디아블로라는 ‘지옥’을 연출하고 있다.

작년 7월에 등장한 ‘디아블로 2’는 스타크래프트에 이어 국내 게임 시장의 최고 인기 게임으로 손꼽히고 있다. 디아블로 2가 인기 있는 이유는 바로 배틀넷을 통한 멀티플레이 때문이다. 디아블로의 멀티플레이는 기존의 전략게임이 제공하던 멀티플레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에버퀘스트나 울티마 온라인처럼 복잡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간단한 것도 아니다.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몬스터를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야 한다. 몬스터들은 나의 경험치가 된다. 때로는 희귀한 아이템을 던져주기도 한다. 디아블로에 사람들이 빠지는 이유는 바로 단순함 때문이다. RPG 게임이라고 하기에 어색할 만큼 턱없이 부족한 퀘스트, 짧은 스테이지 구성, 그렇게 뛰어나지도 않은 그래픽. 하지만 역설적으로 디아블로 2는 엄청나게 방대한 게임이다.

순간 순간 불시에 떨어지는 아이템은 세트 아이템, 레어 아이템, 유니크 아이템, 소켓 아이템 등등 그 종류만 해도 수백 가지가 넘는다. 접미사와 접두사에 따라 구분되는 레어 아이템의 종류는 거의 무한대라 할 수 있다. 이미 디아블로 2의 아이템을 복사해 돈을 버는 장사꾼들이 전국에 널려 있다.

필자가 키워온 캐릭터는 대략 5∼6명 정도 된다. 84 레벨의 소서리스와 폴암바바리안, 아마존, 네크로맨서, 팔라딘 등 모든 캐릭터를 레벨 70이 넘게 키워왔다. 하지만 아직도 필자는 캐릭터의 모든 스킬을 익히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디아블로 2의 캐릭터 구성 체제는 다양하다. 똑같은 팔라딘이라도 주력 스킬에 따라 해머딘, 차지딘 등 다양하게 나뉘어진다.

소서리스는 아이스 소서리스, 라이트닝 소서리스, 파이어 소서리스, 심지어 전사형 소서리스도 있다.

최근 블리자드에서 디아블로 2의 1.06 패치를 내놓으면서 복사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지만 그래도 최고급 아이템은 ‘현금’으로 거래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말도 안되는 아이템 복사와 게임을 즐기는 ‘소비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엉망으로 운영되는 배틀넷.

1.06에 이르러서도 존재하는 수많은 버그 등 문제점이 많은 게임이긴 하지만 디아블로 2는 분명 게임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김준형 게임평론가(versus@phantagram.com)

자료제공 : i-Weekly(http://www.i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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