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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 여인들…올림픽 종목별 원형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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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축구-축국(蹴鞠)

중국고대체육문물도집에 실린 ‘축국도(蹴鞠圖)’. 원나라(1271~1368) 시절 작품 속에 오각형과 육각형의 가죽으로 만든 현대 축구공의 모습과 똑같은 모양의 공이 그려져 있다. [상하이박물관 소장]

중국은 세계 4대 문명 중 한 곳인 만큼 스포츠에서도 근·현대 종목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 1986년 중국 인민체육출판사가 홍콩대도문화유한공사와 함께 발행한 『중국고대체육문물도집』에는 활쏘기(射箭)·레슬링(角力)·무술(技擊)·축구(蹴鞠)·폴로(擊毬)·필드하키·수영(游水)·조정(競渡)·스케이팅·마술(馬術) 등의 모습을 그린 중국 고대 도판들이 가득하다. 책에 나와 있는 각각의 종목 소개에는 중국어 표기뿐 아니라 올림픽 종목과 같은 영어 이름(archery·wrestling·martial arts·football·polo·field hockey·swimming·boat race·ice sports·horsemanship)을 붙여놓고 있다. 마치 ‘올림픽 종목의 대부분이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유수(游水)

티베트 남동부 도시 시가체의 타쉬룬포 사원에서 발견된 벽화. 헤엄치는 모습을 보면 빠르기를 겨루는 경영(競泳)이라기 보다는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타쉬룬포 사원 소장]

 
운동 경기가 원래 전쟁 또는 전쟁을 위한 훈련에서 유래했기에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라면 유사한 종목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축국도(蹴鞠圖)’를 보면 원나라(1271~1368) 시절 그려진 축구공의 모습이 오늘날과 다를 바가 없어 보는 이를 놀라게 한다. 5각형과 6각형의 가죽을 연결해 만든 모습은 현대 축구공의 원리와 똑같다. 이 책은 서문에서 “축국(蹴鞠)은 중국의 전설 속 첫 황제 시절에 발명됐다. 공은 원래 헝겊을 둥글게 뭉쳐 만들었지만 당나라 시절에 이르면 동물의 방광에 바람을 불어넣고 가죽 껍질을 씌웠다’고 설명하고 있다.


골프-추환(毆丸)

명나라 시절 화가 두근이 그린 ‘사녀도(仕女圖)’. 중국 귀족 여인들이 지금의 골프와 유사한 채와 공을 가지고 ‘추환(毆丸)’이라는 이름의 경기를 하고 있다. 채를 들고 있는 시종들의 모습은 캐디와 흡사하다. [상하이박물관 소장]


스케이트-빙희(氷嬉)
청나라 시절의 ‘빙희도(氷嬉圖)’. 목표물에 활을 쏘는 모습이긴 하지만 오늘날 스케이트와 다를 바 없다. [고궁박물원 소장]

 

필드하키(field hockey)로 소개하고 있는 ‘추환’도 인상적이다. 추환은 ‘공을 때린다’는 뜻으로, 춘추전국시대(BC 770년~BC 403년)에서 유래했다. 추환이 그려진 그림 속 모습은 오늘날 골프의 모습과 흡사하다. 추환은 다양한 종류의 채(스틱)를 사용해 구멍에 공을 집어넣는 경기다. 명나라(1368∼1644) 시절 그려진 ‘사녀도(仕女圖)’를 보면 귀족 여인 세 명이 아이언 골프채 같은 걸 들고 조그만 공을 구멍에 넣는 모습이 나온다. 귀족 여인들 옆에 높이가 다른 채를 두 개씩 들고 있는 시종의 모습은 오늘날 캐디의 모습 그대로다. 송나라(960~1279년) 말기나 원나라 초기쯤엔 추환의 자세한 경기 규칙과 점수 계산법을 다룬 『환경(丸經)』이란 책도 나왔다.

 유수(游水)는 지금의 수영(swimming)에 해당한다. 티베트 남동부 도시 시가체의 타쉬룬포 사원에서 발견된 벽화엔 세 사람이 벌거벗은 채 물속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역시 티베트 둔황의 막고굴에서 발견된 북위(386∼534년) 시절 벽화에도 네 사람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헤엄을 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양쪽 모두 빠르기를 경쟁하는 경영(競泳)이라기보다는 아름다움을 강조한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레슬링-각력(角力)

티베트 둔황의 막고굴에 그려진 씨름도 벽화. 북조시대 작품이다.

 

현재 겨울올림픽 종목의 스케이트와 유사한 것도 있다. 책에서 중국어로 ‘빙희’, 영어로 ‘아이스 스포츠(ice sports)’라고 소개한 게 그것이다. 청나라(1636∼1912년) 시절의 김곤(金昆)이라는 화가가 그린 ‘빙희도’에는 가죽신 밑에 쇠날을 붙인 스케이트를 탄 사람들이 활을 쏘며 경기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책은 “스케이트는 만주족들이 좋아하는 전통 스포츠로, 청조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김명호 성공회대 교수는 “중국은 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총 메달수 기준으로 한국에 패한 뒤 충격을 받았다”며 “중국고대체육문물도집은 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선수들에게 ‘현대 체육은 모두 우리 조상들이 예부터 하던 것이니 겁먹을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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