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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가 만든 ‘어린이’ 디자인으로 돌아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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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디자인전 ‘어린이의 세기’에 출품된 못난이 인형 시리즈(1930년, 가장 큰 게 높이 13㎝).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카 포자스카(1881∼1963)가 목각인형 하나하나에 어린 시절의 비행을 담았다. 체코 프라하 장식미술관 소장. [사진 뉴욕 현대미술관]

어른이 아이를 떠받들고 산 건 오래지 않은 일이다. 10세기 화가들은 아동을 덩치 작은 어른으로만 그릴 줄 알았다. 벌거벗은 아이의 모습을 한 아기 천사는 17세기 그림에야 비로소 등장했다.

교육이래야 훈육과 체벌 정도. 실수를 가장한 영아 살해도 드물지 않았다. 프랑스 사학자 필립 아리에스의 명저 『아동의 탄생』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린이와 디자인을 결합한 흥미로운 전시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최근 개막했다. ‘어린이’ ‘어린 시절’에 대한 개념의 발달을 근·현대 디자인과 맞물린 대규모 기획전 ‘어린이의 세기: 디자인으로 자라다, 1900-2000’(11월 5일까지)이다.

 어린이가 어른과 구분되는 인격체로 인정받은 건 20세기 들어서다.

인권신장, 근대적 개인의 형성, 가정·사생활의 존중, 아방가르드(전위) 예술의 태동과 함께 아이들은 창의력을 잃지 않은 경이로운 존재, 그리고 미래의 시민으로 격상됐다. 전시 제목 ‘어린이의 세기’는 어린이의 개성과 권리 존중을 교육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스웨덴 사회학자 엘렌 케이의 책에서 따왔다.

‘아방가르드 놀이시간’ 섹션에 출품된 ‘나쁜 녀석’(1924·부분). 안토니오 루비노(1880∼1964)의 어린이 침실용 그림이다. [사진 뉴욕 현대미술관]

 이번 전시의 스펙트럼은 넓다. 유치원을 창시한 독일 교육가 프리드리히 프뢰벨(1782~1852)의 영향을 받은 교구, 몬드리안과 함께 활동했던 네덜란드 건축가 게리트 리트펠트(1888~1964)가 아동용으로 디자인한 하이 체어 외에도 닌텐도의 게임보이(1989), 로봇이나 비행기 장난감 등 500여 종의 아이템을 시기별 7개 개념으로 체계화했다. ‘새로운 세기, 새로운 아동, 새로운 예술’로 시작해, 아이들의 말랑말랑한 상상력이 존중받기 시작한 1920, 30년대 디자인을 ‘아방가르드 놀이시간’이라는 주제로 꾸몄다.

 또한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이상주의적 디자인을 ‘빛, 공기, 건강’이라는 주제로, 전쟁과 파시즘의 영향으로 국가관·미래시민 등의 기치를 내걸었던 40~50년대 디자인을 ‘아동과 몸 정치’라는 주제로 모았다.

장 프루베의 학교 책상, 레고·브리오’의 완구 등 전후 상처 입은 아이들을 다독인 디자인을 ‘갱생’ 섹션에서, 냉전과 소비사회 속에서 쏟아져 나온 각종 아동용 장난감을 ‘권력 놀이’ 섹션에서 볼 수 있다.

 마지막 주제 ‘더 나은 세상 디자인하기’도 주목된다.

69년 이래 유니세프 포스터, XO 노트북, 이사무 노구치의 버려진 공간을 활용한 놀이터 등을 다뤘다. XO 노트북은 미국의 비영리기구 OLPC(One Laptop Per Children)에서 빈곤국 아이들에게 보급하는 100달러짜리 노트북이다. 물·식량만큼이나 교육이 절실하다는, 나아가 나눔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다. 어려운 곳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것이 미래의 디자인이라는 뜻이다.

 MoMA의 디자인전은 드물게 열리지만 오래도록 회자된다. 병뚜껑·면봉·일회용밴드·각설탕 따위의 하잘것없는 물건을 전시장으로 끌어온 ‘험블 마스터피스: 디자인, 일상의 경이’(2004)전은 세계 5대 도시를 거쳐 2008년 서울 예술의전당에도 왔다. 이 미술관 건축·디자인 수석 큐레이터인 파올라 안토넬리(49)는 지난해 본지와 인터뷰에서 “우리 디자인전 관객의 80%는 피카소·마티스를 보러 왔다가 우연히 들른 사람들이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대화가 열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전시가 한국에 소개될지는 미정이지만 우리 기획자들도 참고할 만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이 문제에 관해서라면 그 어느 곳보다 막대한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는 한국 사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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