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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이유 없이 여기저기 다 아프다’는 어르신 말씀 ‘나 우울하다’는 하소연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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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강일구]

마을회관 뒤 앵두나무집 할머니께서 엊그제 돌아가셨다.

85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동갑내기 남편 병구완을 해오시다가 갑자기 뒤뜰 매실나무에 목을 매시고 저세상으로 가셨다. 요즘 들어 부쩍 우울하다며 힘들어하시고 말수도 줄고 마을회관 모임에도 안 나오시기에 어디 아프신가 했는데 그럴 줄 몰랐다고 모두 안타까워한다. 편찮으신 할아버지를 챙기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안 하셨다는데 이제 그만 고달픈 삶의 끈을 놓고 싶으셨던 게다. 올해도 어김없이 작대기로 흔들어 딴 매실로 진액까지 담가놓으시고선, 오랫동안 공들여 키워 오신 매실나무에 끈을 묶으시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공들여 키운 서울 사는 자식 걱정을 하셨을까, 아님 원망을 하셨을까. 목을 맨 나무는 도끼로 패서 태워버린다는데 마지막 가는 길 사랑하던 매실나무와 같이 가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관심을 좀 더 가져 드릴 걸 하는 맘에 죄스러웠다.

 몇 해 전 70대 할머니가 남편을 프라이팬으로 쳐서 실신시켜 응급실에 갔던 사건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평생 바람피워 속 썩이던 할아버지가 70이 다 되어 기운이 달리니 집으로 돌아왔단다. 그래도 할머니는 싫은 내색도 안 하시고 삼시 세 끼 따뜻한 밥을 해 드렸다는데. 사건 당일, 따뜻한 저녁밥 먹자마자 설거지하는 할머니 귀에 대고 할아버지가 ‘과일 먹자’ 했던 모양이다. 그 순간 할머니가 퐁퐁 묻혀 씻던 프라이팬을 들고 할아버지를 내리치셨다고 한다. 다행히 곧 정신이 들고 몇 바늘 꿰맨 후 귀가하셨다지만, 평생을 밖으로만 나돌던 할아버지랑 살면서도 화 한 번 안 내셨던 그 할머니의 쌓인 한을 알 것도 같다. 담당 의사가 그랬단다. 할아버지가 맞을 짓을 했노라고.

 화를 내는 건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화날 때마다 그때그때 풀어서 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하고, 만약 걸렸으면 감기 치료하듯이 꼭 치료를 해야만 낫는단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전 세계에서는 2위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세계에서 둘째로 많다는 말이다.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우울증이고 환자 중 노인이 젊은 사람의 다섯 배라고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노인우울증 환자가 2004년 8만9000명에서 2009년 14만8000명으로 65.9%나 늘었다니 매우 심각하다. 늘어난 수명과 전통적 가치관의 갑작스러운 변화도 문제고, 노인우울증 환자는 마음이 우울하더라도 몸이 아프다는 하소연만 하셔서 주위에서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이유 없이 여기저기 다 아프다’는 어르신 말씀을 잘 새겨들어야겠다.

 준비 없이 맞는 고령화 사회. 큰 재앙이 될까 봐 겁난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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