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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메달 내놔" 대한체육회, 떼쓰다가 '망신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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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장주영
스포츠부문 기자

대한체육회(회장 박용성)가 억울한 선수를 위로해 주진 못할망정 선수를 두 번 울리고 국제적인 망신만 자초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여자펜싱 신아람(26·계룡시청)에게 공동 은메달을 수여하자는 대한체육회의 요청을 거부했다. IOC는 3일(한국시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문을 대한체육회에 발송했다. 앞서 2일 대한체육회는 석연찮은 판정으로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한 신아람에게 공동 은메달을 수여해 달라고 IOC에 요청했다.

 신아람에게 필요한 위로는 무엇일까. 체육회는 이런 고민을 깊게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랬더라면 IOC에 공동 은메달을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아람이 바란 것은 정정당당하게 겨뤄 따낸 값진 메달이었다. 오심으로 인한 억울한 패배에 한 시간 넘게 피스트에서 내려오지 못한 것이지 메달 자체에 대한 욕심으로 주저앉은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체육회는 무리하게 공동 은메달 요청을 추진했다. 자신들을 향한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체육회는 박용성 회장의 잇따른 실언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박 회장은 판정 번복으로 승리를 도둑 맞은 조준호(유도)에 대해서는 “오심이 아니라 오심 정정”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신아람에 대해서도 “국제펜싱연맹(FIE)으로부터 이번 판정이 잘못됐다는 말을 듣고 사과를 받았다. FIE가 신아람을 위해 기념 메달을 주겠다고 해서 받고 끝내자고 결론 내렸다”고도 했다. 오심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체육회가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공동 은메달 요청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공동 은메달은 당초부터 실현 가능성이 없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공식적으로 3~4위전까지 치른 신아람에게 공동 은메달을 수여할 명분도 없다. IOC로서도 FIE 소관인 판정 문제를 번복한다는 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체육회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에서 심판의 뇌물수수가 밝혀져 대회 후 공동 금메달을 준 전례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공동 메달 수상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은메달 요청 거부로 신아람은 또다시 상처를 입었다. 신아람은 당초 FIE가 주겠다던 특별상에도, 체육회가 추진한 공동 은메달에도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나서 체육회에 요청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선수 본인의 의사와는 달리 ‘메달을 달라’고 떼쓰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올림픽은 선수들에겐 꿈의 무대다. 신아람도 비인기 종목인 펜싱을 하면서 올림픽 무대를 꿈꾸며 달려왔다. 그런데 그 무대에서 납득할 수 없는 판정의 희생양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체육회가 받아내야 할 것은 ‘공동 은메달’ 같은 해괴한 보상이 아니었다. FIE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내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진정 신아람을 위한다면 체육회가 관리하는 올림픽연금 등에서 은메달리스트로 예우해 주는 게 훨씬 실속 있는 보상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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