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탐방] 한국과 다문화 넘어서 ‘우리’ 되는 법 배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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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부모 중 한 명이 다른 나라 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로 또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기 쉽다. 그러나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는 추세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송파구가 지난달 마천동에 위치한 산성 어린이집을 ‘다문화 통합 어린이집’으로 지정한 것도 어린이들의 다문화 가정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서다. 송파구에는 지난해 말 현재 2100가구의 다문화 가정이 있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산성 어린이집 7세반 아이들이 중국·일본·필리핀·캄보디아의 전통 의상을 입고 다문화에 대해 배우고 있다.

산성 어린이집은 111명의 재원생 중 15명이 중국과 베트남, 일본 국적의 어머니나 아버지를 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다. 17일 오전 10시 어린이집에 들어서자 다문화 전통문화 체험이 한창이었다. 중국을 비롯해 일본·캄보디아·필리핀의 문화를 아이들이 체험해 보는 시간이다.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상반기엔 전통문화 체험행사를, 하반기엔 전통음식 체험행사를 진행한다.

 “니하오(안녕하세요).” 다문화알리미 강사 이정미(43·송파구 마천동)씨가 중국 전통의상 ‘치파오’를 차려입고 7세반 학생 25명에게 중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아이들은 “니하오, 씨엔셩(안녕하세요, 선생님)”이라고 대답한다. 이씨가 “한국에서는 명절 때 무슨 옷을 입냐”고 묻자 아이들이 “한복”이라고 대답했다. “중국에서 한복에 해당하는 게 바로 이 ‘치파오’예요. 남자 옷은 ‘탕좡’이라고 부르죠.” 아이들은 중국 영화에나 나올 법한 옷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실제 눈으로 보면서 아이들은 중국의상을 이해해 갔다.

전통의상·놀이 체험하며 다문화 받아들여

어린이들이 일본 전통 의상인 유카타를 입고 전통 놀이를 체험하고 있다.

잠시 후 금색의 캄보디아 전통의상을 입고 나타난 다문화알리미 강사 연페아니(23·송파구 마천동)씨가 코코넛으로 만든 캄보디아 전통악기 ‘러암꼬들어라옥’을 소개했다. 조윤호(7·송파구 마천2동)군은 “코코넛 열매 부딪히는 소리가 캐스터네츠 소리와 비슷하다”며 “발표회 때 캐스터네츠 대신에 러암꼬들어라옥을 사용하면 크기가 커 눈에 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소현(7·송파구 마천동)양은 치파오를 직접 입어보고는 “공주가 된 것 같다”며 들떴다. “우리나라 한복이랑은 느낌이 또 달라요. 치마가 좁아서 달리기를 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치파오를 입고 다니면 좀 더 얌전한 숙녀가 돼야 할 것 같아요.” 아이들은 타국의 의상과 악기가 우리나라의 것과 모양은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신기해했다.

 산성 어린이집은 다문화 통합 어린이집으로 지정된 뒤 매주 수요일 중국어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중국어 강사로도 활동 중인 이정미씨는 “어린아이들이라 그런지 어휘 습득 능력이 빠르다”며 “중국어 수업을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지났을 뿐인데, 아이들이 기초적인 단어 정도는 벌써 익혔다”고 말했다. 중국어를 가르치며 중국 전통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면 수업집중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알게돼 요즘에는 언어와 역사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중국어 익히며 문화적 차이 이해

중국어 수업에 대한 부모들의 반응도 좋다. 6살 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정주리(36·송파구 마천동)씨는 “아이가 집에 와 중국어로 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대견했다”며 “요즘엔 중국어를 가르치려는 부모들이 많은데 어린이집에서 외국어 교육을 시켜주니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문화 통합 어린이집에 대한 기대도 컸다. “선입견 없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어요. 세계화 시대에서 요구하는 게 ‘글로벌 마인드’잖아요. 중국어 수업 외에도 다양한 다문화 체험을 통해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를 ‘나와 다르지 않은 친구’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가질 거라 기대합니다.”

 다문화 가정 부모도 마찬가지다. 중국 국적의 이하영(37·송파구 마천동)씨는 “엄마가 외국인이란 이유로 아이가 따돌림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문화 통합 어린이집이 생겨 다행”이라며 “아이가 자연스럽게 엄마가 태어나고 자란 국가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산성 어린이집이 다문화 통합 어린이집에 지정된 데는 심연순(46·여) 원장의 노력이 컸다. “마천동은 송파구 내에서도 가장 많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있어요. 평소 부모 상담을 통해 다문화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느끼고 있었죠.” 다문화 통합 어린이집으로 지정된 뒤 심 원장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좀 더 효율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해 알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체험과 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타국의 전통문화를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로 했다. 9월에 진행될 요리체험 행사에 대한 기대도 크다. 다른나라의 전통음식을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보면서 해당 국가의 음식과 기후와의 관계를 설명할 예정이다.

자존감 높이고 세상보는 시야 넓혀

“다문화 가정 부모들로부터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얘기를 들을 때 가장 행복해요.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기회가 된다고 하더군요.” 뿐만 아니다. 일반 가정의 아이들은 다른 국가의 전통문화를 배우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있다. 심 원장은 “우리도 해외로 이민을 가면 그곳에서 다문화로 인식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며 “다문화 가정을 우리 생활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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