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나? 북극에서 뜨개질한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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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북극허풍담 1·2·3
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열린책들, 각 권 216~248쪽
각 권 9800원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 허구다. 속된 표현을 쓰자면 ‘뻥’인 셈인데 이 당연한 사실을 이 책은 굳이 대놓고 강조한다. 제목에다 떡 하니 ‘허풍담’이란 이름표를 달았다.

 뻥이 분명한데 이야기는 눈 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처럼 펄떡펄떡 살아 숨 쉰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유머 코드에 웃음보가 터지는 것도 배경이 다름 아닌 바로 북극이라서다. 딴 데라면 몰라도 북극에서라면 가능할 거란 괜한 믿음이 생긴다고나 할까.

 1년의 절반이 밤이고, 나머지 절반은 낮인 곳. 사방천지가 눈과 빙하인데다 곰과 같은 맹수와 언제든지 맞닥뜨릴 수 있는 이 척박한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무엇을 기대하든 상상 이상’이라는 것. 책은 그린란드 북동부에 살고 있는 괴짜 사냥꾼, 고독에 몸부림치는 사나이 수컷들의 좌충우돌 북극 생활기다.

 사냥꾼들은 그린란드 원주민이 아니다. 사냥회사에서 파견한 직원으로 그들이 ‘저 아랫동네’라고 부르는 문명사회를 등지고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자연 상태 그대로에 가까운 북극 주민이 되면서 이들의 삶은 시트콤이 된다.

 동료의 장례식에 모였다가 모두 만취해 죽은 사람 대신 ‘떡 실신’한 동료를 관에 넣은 뒤 묻는가 하면, 수송선에 실려온 쥐 한 마리를 동사(凍死)시켜 잡겠다고 사냥꾼들은 빙하 위에 텐트를 치는 노숙도 불사한다. ‘시(詩) 짓기 배틀’에다 문신과 뜨개질 열풍까지 북극의 나날은 지루할 틈이 없다. 게다가 ‘차가운 처녀’로 일컬어지는 상상의 여인 엠마 앞에 북극의 사나이들이 ‘올 킬(All Kill)’되는 모습에 기가 찰 노릇이다.

 웃음기를 담뿍 담은 북극 발 서늘한 이야기가 더 매력적인 것은 사람 냄새가 진하게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고독을 떼어낼 수 없는 북극에서 사냥꾼들의 인간관계는 더 끈끈하다. 말할 상대가 없어 며칠씩 눈썰매를 타고 이웃을 찾아가는가 하면 곰을 잡지 못해 좌절한 신참을 위해 고참들이 몰래 숨어서 곰 사냥을 돕기도 한다.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스토리 자체도 흥미진진하다. 그린란드 북동부 탐사에 참여했다가 거기에 눌러앉은 작가는 그곳에서 16년을 지내며 사냥꾼과의 체험과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책을 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북극 사냥꾼들에게 장식용 책을 무게로 달아 팔던 책 장수가 작가의 원고를 몰래 빼내 출판업자에게 넘기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났다.

 웃긴 작가에 재미 있는 출간 스토리에 출판사도 하나 보탰다. 이번에 번역된 책은 작가의 연작 콩트집 10권 중 3권으로, ‘4권 이후의 출간은 독자의 요청에 달려있다’며 출간 압박용 이메일(sajangnim@openbooks.co.kr)을 명기한 것. 나머지 이야기가 궁금해 압박 메일 대열에 합류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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