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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가유공자 제도, 비리 먹잇감 돼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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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가유공자 단체의 명의를 빌려 수의계약 사업을 벌여온 인쇄업자가 구속됐다. 해당 인쇄업자는 30여 개 정부·공공기관의 일부 공무원과 직원들을 상대로 50억원대의 뇌물·향응 접대를 제공한 정황이 드러났다. 한 나라의 기본을 이루는 국가유공자 지원 제도가 어쩌다 한낱 범죄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인가.

 현행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정부기관 등은 보훈·복지단체가 직접 생산하는 물품 등에 한해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 해당 단체들이 공장 운영 등을 통해 일자리나 복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일반 경쟁 입찰을 거치지 않아도 되게끔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인쇄업자 심모씨는 이러한 지원 제도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상이군경이 거주하는 자활촌 중 한 곳인 S용사촌 인쇄조합의 명의를 빌려 12년 동안 불법 사업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간의 매출만 845억원에 이른다.

 문제는 이러한 불법 사업이 어떻게 별 탈 없이 굴러갈 수 있었느냐는 점이다. 경찰은 심씨가 ‘S용사촌은 정부기관과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국가보훈처의 허위 공문서를 발급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보훈처 관계자 5명을 입건했다. 또 관련자 진술과 회계장부 등을 통해 정부·공공기관 관계자들이 해당 업체로부터 뇌물과 접대를 받은 단서를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세금으로 배를 불린 업자의 배후에 비리에 젖은 공무원이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철저한 조사로 비리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 해당 기관들도 내부자 보호에 급급하지 말고 강도 높은 자체 감찰을 벌여야 할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에 확인된 제도적 문제점을 보완하는 작업이다. 용사촌 등의 유공자들은 이제 60대 후반부터 70대까지로 고령화됐다. 공장 운영이 쉽지 않고 공장 재투자를 위한 자본도 부족하다. 여건상 직접 생산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단체를 직접 지원하는 등의 대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다. 국가유공자는 나라를 위해, 우리 사회를 위해 몸을 바친 이들이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협잡의 먹잇감으로 방치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