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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일본 유학생잡지 ‘신한자유종’에 춘원 18세 때 쓴 여행기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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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소설가 춘원(春園) 이광수(1892∼1950·사진)가 18세 때 쓴 여행기가 발견됐다. 제목은 ‘여행의 잡감(雜感)’. 일본에 유학 갔던 춘원이 귀국하면서 1910년 3월 23∼24일 이틀간 총 4회에 걸쳐 쓴 편지 형식의 기행문이다. 근대서지학회(회장 전경수)가 발간하는 반년간 잡지 ‘근대서지’ 5호(다음 주 출간 예정)에 전문이 공개된다.

 이 여행기는 1910년 4월 1일 도쿄에서 발행된 ‘신한(新韓)자유종’ 3호에 실렸다. 이에 대한 해제를 쓴 장신 역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신한자유종’은 춘원의 회고록을 통해 이름만 전해지던 잡지고, 일본의 조선유학생 모임인 신한소년회에서 발행했다”며 “‘신한자유종’ 3호에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을 알리고 안중근의 ‘장부가’를 게재하며 안중근을 독립군의 대표격으로 찬양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조선은 풍전등화의 위기였다. 경술국치 5개월 전이다. 춘원이 “일어나라, 우리 소년 제군!”하며 촉구하는 구절이 눈길을 끈다. “소년제군이여, 이 말을 들으니 어떤 느낌이 드는가. 천제(天帝)가 인간을 만들 때 모두 똑같이 두 눈과 두 손, 두 다리를 주지 않았는가. 무엇이 부족해서 저 왜국(倭國)때문에 압제(壓制)를 받는가. 이목구비를 모두 갖춘 신대한 소년 제군은 이것을 생각하여 세월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고, 자기의 목적과 자기의 천재를 발휘하여 그 목적지를 향해 서두르라. 신대한을 어깨에 짊어진 대한 소년들아.”

 조선의 운명을 예감하는 듯한 구절도 보인다. “결국 대한의 땅(韓土)은 뜨거운 모래로 가득한 사막이 되고, 푸른 언덕(靑邱)은 허무한 역사적 명칭이 되어 후인의 호기심이나 자극하는데 불과하게 될 것이다.”

  춘원은 이보경(李寶境)이라는 아명과 고주(孤舟)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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