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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골랐어요] 자연만한 책이 있나요?

중앙일보

입력

몇 년 동안 밭농사를 지었던 적이 있습니다. 농작물이 잘 자라게 하려면 부지런히 풀을 뽑아줘야 하는데, 아무리 뽑아도 없어지지 않는 거예요.

루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하면서 호미질을 하다가 한 쪽 귀퉁이에 작은 꽃이 다닥다닥 피어있는 것을 발견했어요. 뽑아버릴까 망설이다, 꽃이 하도 앙증맞아서 그대로 채소 옆에 자라도록 은혜(?)를 베풀어주고 난 뒤로는 오히려 잘 자라는지 살피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생긴 것만큼이나 재미나고 정감있는 들꽃 이름들을 하나씩 알아 가다 보니 그 전까지 모두 싸잡아 '잡초' 로 불렀던 것이 미안해지더군요.

『오소리네 집 꽃밭』(길벗어린이)은 이렇게 너무 흔해서 소중한 줄 몰랐던 우리 들꽃의 아름다움을 화면 가득 보여줍니다.

오소리 아저씨가 꽃밭을 만들려고 괭이질을 하는데, 여길 파려니 패랭이꽃이, 저길 파자니 잔대꽃이, 또 그 옆에는 용담꽃이 있어서 괭이질을 할 수 없었죠.

대체 어디에 꽃밭을 만들면 좋을까 눈을 들어보았더니, 오소리네 집 둘레에는 벌써 온갖 들꽃들이 피어 있었답니다.

따사로운 봄 햇살과 함께 흙 냄새, 꽃 냄새를 향긋하게 전해주는 『우리 순이 어디 가니』(보리)에도 역시 여기저기 들꽃이 피어있습니다. 『아빠, 꽃밭 만들러 가요』(사계절)에는 씨앗을 뿌리고, 새싹이 움트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아이들 마음을 생생한 표정묘사로 보여줍니다. 이런 책들은 우리 가까이에 있는 작은 생명을 허투로 보지 않도록 만들어주지요.

기자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책이 아이들 정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면, 책이 없던 시대나 지금도 책이 흔치 않은 시골 아이들에게는 무엇이 그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있을까요?" 너무 쉬운 질문이라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자연' 이 얼마든지 그 역할을 넉넉하게 해주고도 남을 것이라고. 그 속에서 살아 있는 것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얻는 경험이 어찌 책을 통해 머리로 아는 것만 못하겠느냐고요. 오히려 하찮아 보이는 것에도 생명이 있고, 그 생명들은 우리 삶에도 소중하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되겠죠.

이제 꽃 소식이 한창입니다. 이런 때는 아이들을 책상에만 앉혀 놓지 말고, 살아있는 것들과 더 따뜻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밖으로 데리고 나가 보세요. 들꽃 외에도 작은 생명들과 친구 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기에 알맞은 때입니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은 결코 책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 일이니까요.

허은순 애기똥풀의 집(http://pbooks.zzagn.net)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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