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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업체 특판 때 ‘백지계약서’ … 공정위, 백화점·마트 6곳 적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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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판촉행사 명칭:____/판촉행사 기간:__년 __월 __일~__년 __월 __일/판촉비용 분담비율:협력업체 __% __원’.

 대형마트 A사가 협력업체와 맺은 판촉비용 합의서의 일부다. 주요 내용과 날짜까지 모두 빈칸인데도 협력업체 인감은 찍혀 있다. 내용이 빠진 ‘백지계약서’를 협력업체에서 받은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7일 중소납품업체와 계약할 때 핵심 내용이 빠진 백지계약서를 사용한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과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에 법규정 준수를 요청했다.

공정위가 5월 초부터 6개 대형유통업체를 실태조사한 결과 6개 업체 모두가 백지계약서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법에 따르면 유통업체는 납품업체와 계약을 하면 즉시 서면계약서를 줘야 한다. 판촉행사를 하는 경우엔 판촉행사 명칭과 기간, 판촉사원 수와 업무 내용, 판촉비용 분담비율까지 계약서에 적어야 한다.

 하지만 대형유통업체는 백지계약서를 넉넉히 받아 놓은 뒤 그때그때 계약조건을 채워 넣었다. 아예 계약기간이 끝난 뒤 형식적으로 계약서를 쓰기도 했다.

 지철호 공정위 기업협력국장은 “이런 관행 때문에 납품업체에 과도한 판촉비용을 부담시키는 등 불공정행위가 일어나기 쉬웠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3개 백화점 모두 해외 유명 브랜드와 계약할 땐 핵심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은 계약서를 쓰고 있었다.

 공정위는 조만간 6개 대형유통업체 간담회를 열고 서면계약서를 제대로 작성할 것을 요청할 예정이다. 또 적발된 백지계약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혐의 사실을 정리해 시정명령이나 과징금 등 제재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대형유통업체는 계약서에서 일부 미비점이 있었음을 인정하지만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납품업체별 기본 계약서는 다 제대로 작성돼 있다”며 “다만 특별행사 때마다 건건이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하는 과정에서 처리가 미흡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 유명 브랜드는 특별행사를 안 하니까 백지계약서도 없는 거지 국내 업체를 차별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번처럼 공정위가 조사 진행 중인 사건 내용을 중간에 공개한 건 이례적이다. 지철호 국장은 “제재조치가 나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 전에 빨리 시정해 올바른 계약서를 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판매수수료를 더 내리라고 유통업체를 압박하기 위해 공정위가 서두르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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