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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손으로 주문받는 바리스타 … C자 만들면 ‘캐러멜 마키아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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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달 9일 서울 장안동 스타벅스 장안평점에서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이선희(33)씨가 동료로부터 주문 내용을 전달받고 있다. C자 형태로 손을 만들어 보이면 ‘캐러멜 마키아토’란 뜻이다. [김형수 기자]

법이 정한 장애인 의무 고용률은 2.5%. 기업들은 직원이 100명당 이 비율만큼 장애인을 채용해야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이 이를 채우지 못하고 부담금을 내는 게 현실이다. 아니 ‘채우지 못한다’가 아니라 ‘채우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장애인을 고용하느니 돈을 내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 없는 법칙은 없는 법. 장애인을 고용한다고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기업 이미지가 좋아져 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회사들이 있다. 이런 기업을 찾아가 노하우를 들어봤다.

‘장애인 근무 중’
안내판으로 편견 깨
‘거부감’ 정면 돌파한 스타벅스

“마키아토, 톨 사이즈!” 지난달 9일 서울 장안동 스타벅스 장안평점. 주문을 받는 직원이 몸을 돌려 검지와 중지·약지 세 손가락을 아래로 펴 영문자 M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이를 본 바리스타 이선희(33)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커피 제조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일한 지 두 달째인 이씨는 청각장애인이다. 전국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일하는 59명의 장애인 직원 중 한 명이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2007년 장애인 4명을 채용한 이래 지난해까지 그 숫자를 꾸준히 늘려 왔다.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업체는 장애인 채용에 소극적인 게 보통이다. 고객들이 거부감을 갖거나 불편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스타벅스는 올해 장애인 직원을 1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스타벅스는 고객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매장에 ‘장애인이 근무하고 있다’는 안내판을 설치한 것. 스타벅스 측은 “직원이 장애인이라는 걸 모르면 반응이 조금만 느려도 불편을 호소하지만, 알기만 해도 고객 불만은 현저히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만큼 장애인과 더불어 생활하는 분위기가 전보다 많이 무르익었다는 것이다.

 청각장애인이 일하는 매장에는 각 메뉴를 수화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린 안내판을 주문대 앞에 설치했다. 매장 직원뿐 아니라 주문하는 고객들도 사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장애인은 채용이 확정되면 첫 3주 동안 장애인고용공단에서 파견된 복지사와 함께 근무한다.

 스타벅스코리아 총무인사팀 박은주(34) 과장은 “장애인 직원에 대한 교육만큼이나 일반 직원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다”고 했다. 장애인 동료에 편견이 없다고 해도 어떻게 도와야할지 모른다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애인 직원이 근무하는 매장 직원들은 예외 없이 2시간30분씩 ‘함께 일하기’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출근부터 퇴근까지
멘토와 함께 일 해
포스코 세탁업체 포스위드

지난달 8일 포항시 남구 동촌동 포스위드 지하 작업장에서 직원들이 어깨를 토닥이며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지난달 8일 경북 포항 동촌동에 위치한 포스위드 내 지하 작업장. 포스코 공장에서 쓰는 작업복과 수건 등을 세탁하는 이곳에서 120㎏짜리 세탁기 30여 대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남진희(23)씨가 세탁기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자 뒤에 있던 이효분(58)씨가 다가와 “이걸 눌러야 문을 열 수 있다”며 세탁기 문을 열어줬다. 남씨는 포스위드가 고용한 지체 장애인 82명 가운데 하나. 이씨는 이들의 멘토다. 이곳엔 이씨 같은 멘토가 23명이 있다. 이씨는 “처음엔 작업 순서를 외우지 못해 힘들어하지만 6개월 정도 지나면 잘한다”고 말했다.

 포스코 자회사인 포스위드는 국내 최초의 장애인 표준 사업장이다. 전체 직원의 30% 이상이 장애인이면 장애인 표준 사업장으로 인정받는데 포스위드는 52%(177명)가 장애인이다. 그런데도 포스위드가 2007년 설립된 이래 꾸준히 매출을 늘려가는 건 멘토와 함께 짝을 이뤄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직업 평가 상담사도 상주한다. 지적 장애인과 자폐 장애인의 적성과 업무 적응 정도를 파악하고 평가해 멘토와 함께 이들의 적응을 돕는 게 상담사의 일이다. 건강 레드카드 제도 역시 지적 장애인을 위해 도입됐다. 지적 장애인의 경우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무실에 빨간색 카드를 비치해두고 몸이 좋지 않으면 관리자에게 카드를 보여주게 하고 있다. 카드를 보여주면 해당 장애인은 그날 힘이 덜 드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배치한다.

 포스위드에는 지체 장애인도 많다. 이들을 위해선 적절한 시설과 장비를 마련하는 데 주력한다. 작업복 수선반에서 일하는 조금화(55)씨의 재봉틀은 페달이 오른쪽이 아닌 왼쪽에 있다. 조씨가 오른쪽 다리를 다쳐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클리닝 작업장 한가운데 작은 운반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둔 것도 무거운 옷더미를 나를 수 없는 지체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다.

포항=김영민 기자

장애인 은행원이
장애인 입사 추천
금융 첫 의무고용 달성 기업은행

올 3월 기업은행에 입사한 최세영 계장은 다리가 불편하다. 최씨는 “업무 배치뿐 아니라 동선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배려받았다”고 말했다. [사진 기업은행]

기업은행의 장애인 고용률은 최근 2년 사이 0.76%에서 2.5%로 3.3배가 됐다. 그러면서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의무 고용률인 2.5%를 충족시킨 회사가 됐다.

 장애인 채용과 관련한 기업은행의 변화는 2010년 말 조준희(52) 행장이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조 행장은 “법이 정한 최소 수준도 못 지키는 건 죄악”이라며 장애인 고용을 역점 과제로 제시했다. 고객의 돈을 모아 수익을 내는 은행은 사회적 역할에 더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를 위해 ‘연중 상시 채용 시스템’을 도입했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경쟁해야 하는 일반 채용을 꺼린다는 데 착안한 제도다. 이장섭(46) 인사팀장은 “가산점을 줘도 일반 채용에는 잘 오지 않아 아예 분리한 뒤 상시로 운영해 심리적 문턱을 낮췄다”고 말했다.

 ‘장애인 직원 추천 제도’란 것도 만들었다. 장애인 직원이 유능한 주변 장애인을 추천하는 제도다. 장애인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자는 취지로 도입했는데, 올해 이를 통해 2명의 장애인 직원이 입사했다.

 장애인들이 입사 후 제 몫을 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객들이 장애인 직원을 생소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지점 근무보다는 본사에서 일하며 지점을 지원하도록 한다. 전화 상담원처럼 많이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업무에 장애인 직원을 집중 배치했다. 다리가 불편한 최세영(30) 계장은 “엘리베이터 근처에 자리를 배정받는 등 업무 배치뿐 아니라 좌석 배치까지 배려를 받았다”고 말했다. 인사팀에선 장애인 직원이 업무에 잘 적응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살펴 어려움을 겪으면 부서를 바꿔주기도 한다.

 이장섭 팀장은 “짧은 시간에 장애인 직원이 급격히 늘었지만 이로 인해 업무 효율이 떨어졌다는 보고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에게 신뢰를 줘야 하는 금융회사로서 장애인 고용을 통해 이미지를 개선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김영민 기자

90분간 앞 못본 채
길 건너고 장 보고 …
엔비전스 ‘어둠속의 대화’

엔비전스 송영희 대표는 “장애인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회적 부담이란 편견을 깨려고 회사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그 역시 앞을 보지 못한다. [오종택 기자]

‘어둠 속의 대화’라는 공간 체험 전시가 있다. 관람객들은 90분 동안 어둠 속에서 시장이며 도로 같은 일상적인 공간을 경험한다. 자동차 경적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계단 난간이 보이지 않아 조바심을 내면 인솔자가 길 안내를 한다. 이렇게 어둠 속에서 관람객들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게 돕는 이는 시각장애인들이다. 일상생활에서라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도움을 주는 셈이다.

 2009년 8월 첫 상설 체험전시를 시작해 누적 관람객 8만 명이 넘어선 ‘어둠 속의 대화’를 꾸려나가는 곳은 엔비전스다. 18명 중증 시각장애인이 일하는 엔비전스는 NHN의 자회사이며, 문화예술 쪽에서 보기 드물게 장애인을 많이 고용한 곳이다. 전체 직원이 24명이니 장애인 고용비율이 70%가 넘는다. 그 자신 시각장애인인 이 회사 송영희(40) 대표는 “공연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도움을 받는 처지에서 주는 입장이 되며 생긴 직원들의 프로의식 덕분”이라고 말했다. 엔비전스의 장애인 직원들은 알아서 연기 연습과 발성 연습을 한다. 관객들에게 더 인상 깊은 체험전시 경험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송 대표는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장애를 역으로 활용하면서 얻게 된 소득”이라고 말했다.

 어둠 속의 대화는 1988년 독일에서 시작됐다. 국내엔 2007년 소개됐다. 전시 소식을 접한 송 대표는 국내에 전시를 들여온 기획사를 찾아가 “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2008년 기획사가 부도가 나자 그는 권혁일 당시 NHN 대표를 직접 찾아갔다. 송 대표는 “이 전시만큼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설득했고, NHN은 송 대표가 있던 기획사를 자회사로 받아들이고 전시를 계속하도록 지원해 줬다.

 송 대표의 꿈은 편견을 없애는 것. 장애인은 도움을 주고 보살펴야 하는 ‘사회의 부담’이라는 편견 말이다. “그걸 없애기 위해 엔비전스가 설립됐고 어둠 속의 대화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송 대표는 말했다.

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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