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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KAIST 정상화 위해 서남표 명예롭게 물러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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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내 최고의 이공계 대학인 KAIST가 지금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4년 연임 뒤 절반의 임기를 채운 서남표 총장을 둘러싸고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가 그의 퇴진을 요구한 데 이어 이사회가 오는 20일 대학과 서 총장 간 계약 해지를 논의한다고 한다. 이사회가 임기 중간에 계약 해지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취할 정도로 KAIST가 처한 상황은 위중하다. 서 총장은 이미 대다수 교수가 참여한 두 차례 투표에서 불신임을 받았으며, 지난달엔 학생들마저 사퇴 요구 시위에 가담하면서 안타깝게도 그의 리더십은 실종됐다.

 국민들은 그동안 교수들의 승진 및 업적 기준을 높여 철밥통을 깨고, 학문적 수월성을 추구하려는 서남표의 개혁에 찬사를 보냈다. 또한 반대 목소리를 내는 교수들을 설득해 개혁 과정에 동참하게 하는 리더십도 기대했다. 대학뿐 아니라 기업 등의 조직에서도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나올 수 있으며, 이를 잘 관리하는 것도 리더의 중요한 역할이다.

 하지만 서 총장이 취임한 이후 수년간 학내 갈등이 이어지면서 개혁은 한계에 봉착했다. 학생들은 연구와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다. 교수와 학생들이 촌음(寸陰)을 아껴 연구와 공부에 몰두해야 하며, 서로에게 지적 자극을 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런 학문의 전당에서 서로를 몰아내기 위한 저급한 고소·고발이 판치고 있는 현실은 리더십의 붕괴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현재 KAIST에서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기능 정지 상태에 빠진 대학을 정상화시키는 일이다.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서 총장이 자리를 고수하는 한 KAIST의 정상화는 힘들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대학의 구성원들이 한곳으로 역량을 모으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책임은 리더인 총장이 지는 게 맞다. 서 총장은 더 이상 사태를 수습할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가 개혁을 추진해 온 학교와 학생을 위해서도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리더가 들어와 국민들이 기대하는 강력한 대학 개혁을 이끌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해 서 총장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