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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아기 무상보육 어떻게 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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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올해부터 시행 중인 0~2세 무상보육 정책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고갈로 전면 무상보육이 중단될 위기에 놓이자 정부가 고소득층 아이는 무상보육 대상에서 빼겠다며 ‘차등 지원’ 방침을 밝히고 나선 것이다.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기존의 정책을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과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인 만큼 수정돼야 한다는 반론이 엇갈린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영·유아 보육료, 소득 따라 차등 지원해야

김인경
KDI 연구위원

올해부터 시행 중인 0~2세 무상보육 정책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고갈로 전면 무상보육이 중단될 위기에 놓이자 정부가 고소득층 아이는 무상보육 대상에서 빼겠다며 ‘차등 지원’ 방침을 밝히고 나선 것이다. 보편적 복지 차원에서 기존의 정책을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과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인 만큼 수정돼야 한다는 반론이 엇갈린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최근 지자체 보육예산이 빠르게 소진되면서 보육료 지원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원인을 살펴보자면 일단 철저한 준비가 부족했다. 정치권과 정부가 올해 예산을 편성한 후 뒤늦게 영아(0~2세)에 대한 무상보육을 결정하면서 보육 수요의 급격한 증가를 예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금번 보육정책 개편이 실패한 근본적인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는 그간 정부가 출산율 증가를 위해 양육비 경감에 주안점을 두고 보육정책을 운용해 온 데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현재 출산율 제고가 시급한 상황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경제활동 인구의 감소가 예상됨에 따라 잠재성장률 저하와 세수 감소가 우려된다. 그러나 출산율을 높이는 데 있어 양육비 지원보다는 육아휴직과 단축근로의 활성화, 양질의 보육서비스 제공 등 다각도의 일·가정 양립 정책이 효과적이라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아울러 보육정책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아동의 발달도 함께 지원해야 하며, 정책 수립 시 목표 간 정합을 추구해야 한다. 보육료 지원에 있어 대상과 방식 선정에 대한 고심이 중요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둘째로 계층 간 아동발달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보육지원체계가 수립되지 못했다. 영유아 보육 지원이 미래를 위한 투자임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고소득층에 보육료를 지원하는 것은 예산운용상 효율적인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조기 보육지원은 취약계층 영유아를 대상으로 할수록 자원 투입 대비 성적과 소득향상 면에서 효과적이다. 게다가 선별 지원이 가정에서 충분한 교육혜택을 받지 못하는 영유아에게도 풍부한 교육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형평에도 맞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영아 보육료를 선별적으로 지원할 의사를 표명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추가적으로 선별지원 원칙을 유아에게도 적용해 의무교육 시작 전에 계층 간 교육격차를 최대한 완화해야 한다. 인간의 인적 역량은 축적된 역량이 많을수록 추가적인 계발이 용이하다. 따라서 영·유아기 때 발달에서 뒤처진 아동은 다른 아동과 같은 수준의 초등교육을 받아도 따라가기가 쉽지 않고, 초등학교 때 축적된 학습역량이 부족하니 다시 중등교육에서 지식의 습득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일생의 초기에 벌어진 계층 간 교육격차가 점차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교육격차는 결국 소득격차로 이어져 계층 간 경제적 이동성을 낮춤으로써 사회통합을 저해한다.

 물론 정부가 교육비와 직업훈련 지원 등을 통해 차후에 개입해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청소년과 성인의 능력 향상을 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인적 역량의 격차가 크게 벌어져 영·유아 때보다 능력 차이를 만회하는 데 많은 재원이 들며 정책적 개입을 통한 보정이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

 추가로 고려할 점은 영아 때는 양육자와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해 인지와 비인지 능력 발달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지, 장시간의 시설 이용이 긴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육아휴직 중이거나 미취업 여성의 영아에게는 종일제보다는 시간제로 보육료를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는 보육료 지원액과 양육수당의 격차를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보육지원의 선두 격인 스웨덴에서도 대부분의 지자체는 보육료를 선별 지원하면서 비근로 여성의 영아에게는 주당 15시간에 한해 시설에 자리를 제공한다.

김인경 KDI 연구위원

보편적 방식 택해야 서비스 질 높아진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

정부의 보육 지원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 방침이 알려지면서 무상급식에 이어 보육을 두고 다시 한번 보편적 복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보육정책을 ‘무상보육’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국민의 세금으로 제공되는 국방이나 치안서비스 등에 대해서도 무상국방이나 무상치안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국가의 지원확대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법정 본인 부담금이나 현장학습비와 특기활동비 등을 기타 필요경비로 부담하고 있으므로 실제로도 공짜로 이용하는 무상보육이 아니다. 정부의 보육 이용자들에 대한 실태조사에서도 개별 가정마다 여전히 월 15만~24만원의 보육 관련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에 따라 지원 대상을 선별하거나 보육료를 차등해 지원하지 않고 대상 연령의 모든 아동에게 지급하는 보편적인 방식을 택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보편적 방식으로 해야 보육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저소득 취약 계층만 대상이 되는 보육지원 정책이라면 중산층들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보육에 대한 예산 증액과 이에 따른 추가 부담의 확대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재벌가의 손자들은 여전히 자신들만 다니는 고급 민간 보육시설을 이용할 것이므로 질 좋은 공공보육시설이 늘어날 수도 없고, 민간보육시설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나 표준보육단가를 인상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벌가에 혜택을 주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면 현 정부에서 시행한 부자감세부터 철회해야 할 것이다.

 둘째, 다수의 국민에게 보편적 방식으로 지원해야 가계비 부담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지난 4월 기획재정부는 1분기 소비자물가 동향 분석에서 정부의 물가 안정 정책의 성과로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을 기록했으며, 이것은 보육 및 유아교육시설 이용료 지원 효과로 인한 0.4%포인트 감소 때문이라고 자랑했다. 즉 보육비 지원 확대 등의 보편적 복지 정책이 전체적으로 가계의 고정지출 부담을 줄여주고, 소비자물가 상승 방지의 유용한 수단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셋째, 우리나라와 같은 세계 최저의 저출산율을 보이는 나라에서 출산 기피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육아에 대한 부담이므로 보편적 방식으로 지원해야 한다. OECD국가 중 가장 낮은 50% 초반의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의 나라에서 보육 지원은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경제정책이기도 하다. 생산가능인구가 사실상 감소하기 시작한 심각한 저출산 국가에서 몇 푼을 아끼겠다고 육아에 대한 지원을 많은 행정비용과 수혜대상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굳이 부모의 소득을 따져 차등 지원해야 할 것인지 묻고 싶다.

 넷째, 보육 지원 정책은 양질의 인적 자원 양성 정책이기 때문에 보편적 방식으로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 의학적으로도 만 2세까지 두뇌의 90%가 형성되므로 이 시기의 영양 공급 여부가 매우 중요하며, 유아기의 양육 환경은 아동의 인지도와 두뇌 발달뿐 아니라 성인이 돼서 학습 능력 및 정서 발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인생의 첫 출발선상에서부터 부모의 소득 때문에 차별받거나 소외되는 일은 없도록 해야 공정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