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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설렁탕 가장 맛있는 식당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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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00년 하고도 8년. 서울 ‘이문설농탕’이 설렁탕 하나로 이어온 세월이다. 60대도 이 집에선 ‘어린 단골’로 통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홍씨가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 ‘이문옥’을 연 게 시작이었다. 건국 후 서울시 음식점 허가 1호이기도 하다. 마라톤 영웅 손기정, 남로당 거물 박헌영, 풍운아 김두한 등 단골의 이름만으로도 현대사다. 대한민국보다 긴 역사를 이어온 비결은 담백한 국물 맛이다. 비법은 잔재주가 아니다. 현재 주인인 전성근(67)씨는 “좋은 재료와 오래 끓이는 정성, 그 이상의 비법은 없다”고 말했다. 이문설농탕은 양지·도가니·사골 등을 솥에 넣고 16~17시간을 끓인다. 연료가 장작에서 연탄으로, 다시 가스로 바뀌었을 뿐이다. 표준어인 설렁탕 대신 ‘설농탕(雪濃湯)’이란 이름을 고집하는 것도 눈처럼 뽀얀 국물에 대한 자부심에서다.

 농림수산식품부와 한식재단이 11일 이문설농탕처럼 한국의 맛을 이어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음식점 100곳을 추려 발표했다. 8개월간 역사·평판에 대한 조사를 거쳤다. 50년 이상 된 음식점이 대상이지만 역사가 몇 년 모자라도 전통 맛집이라 할 만한 4곳(1963~67년 개업)도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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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맏형은 1904년 세워진 이문설농탕이다. 이 집은 재개발로 지난해 견지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통 북한식 냉면집인 부산 내호냉면은 우암동 시장 골목 구석에 있다. 1919년 북한에서 시작해 한국전쟁 후 이곳에 터를 잡았다. 3대 주인 이춘복(63)씨는 허름한 골목을 떠날 생각이 없다. 그는 “고향 생각에 찾아오는 어르신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내호는 함경도의 지명이다.

 오래된 음식점은 첫 주인의 억척과 강단이 밑거름이 된 곳이 많다. 부산 박달집(보신탕)의 창업자인 고 박여숙씨는 일제 때 음식값을 치르지 않은 일본 순사에게 칼로 찌르고 가라며 맞서 돈을 받아내기도 했다. ‘밥 정(情)’도 장수의 비결이다. 전복·물미역이 들어간 비빔밥으로 유명한 울산 함양집의 1대 대표 고 강분남씨는 한국전쟁 때 아군·적군을 가리지 않고 걷어 먹인 덕에 북한군이 목숨을 살려줬다고 한다. 이 집은 주문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 밥을 퍼놓지 않는 게 원칙이다.

 이번에 선정된 100곳 중 가장 많은 음식점이 있는 지역은 서울(28곳)이었다. 나주 하얀집(나주곰탕), 해남 천일식당(떡갈비) 등 전남(12곳)이 뒤를 이었다. 동별로는 서울 서소문동이 4곳(잼배옥·강서면옥·고려삼계탕·진주회관)으로 가장 많았다. 양일선 한식재단 이사장은 “일본은 540년간 이어온 교토의 소바 집 같은 ‘시니세(老鋪, 오래된 음식점)’를 관광 명소이자 문화 자원으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100대 식당의 상세한 정보는 한식재단 홈페이지(www.hansik.org)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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