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세만 1200억 넘어… 지자체들 '한전 쟁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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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이전을 둘러싼 여권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주요 공공기관 유치에 각 지자체들이 사활을 걸고 달려들면서 점점 더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 힘들어지고 있어서다. 그 핵심에 지난해 순이익 2조8800억원의 '수퍼 공룡' 한국전력이 있다.

현재 광주.전남과 부산을 비롯해 대구.경북.전북.강원 등 수도.충청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광역단체가 한전 유치전에 뛰어든 상태다. 특히 광주.전남은 박광태 광주시장과 박준영 전남지사가 지난 22일 함께 상경, 이해찬 총리에게 한전 이전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유치 활동에 나섰다. 부산도 18일 시의회가 한전의 부산 이전을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문을 채택하는 등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영.호남 간 감정 대립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

지자체들이 이처럼 한전 쟁탈전을 벌이는 이유는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날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한전 직원은 2만여 명에 달한다. 서울 본사 직원만 1100여 명이다. 2003년 기준으로 법인세.부가세.농어촌특별세 등 국세만 7596억원을 냈다. 주민세.사업소세.재산세.종합토지세 등 지방세도 901억원이다. 지난해 세액은 이보다 훨씬 늘어 국세 1조1600억여원, 지방세 1200억여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렇다 보니 해당 지역 의원들도 가세하지 않을 수 없다. 열린우리당 조경태(부산 사하을)의원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부산의 위상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며 "상징적 측면에서라도 부산 유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당 양형일(광주 동)의원은 "수도권과 영남권은 우리나라 경제발전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곳"이라며 "행정도시가 충청권에 가면, 한전이라도 광주.전남에 보내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여권은 지난 18일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열어 다음 달 초로 예정됐던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안 발표를 늦추기로 했다. 이 자리에선 "한전의 이전 효과가 지나치게 부풀려 알려졌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한다. 실제로 2003년 한전이 낸 지방세 901억원 중 한전 본사가 서울시에 납부한 금액은 143억원 정도다. 나머지는 각 지방 사업소가 해당 지역에 낸 세금이다. 그러나 이미 이런 설득이 먹혀들 상황이 아니다.

유치전이 뜨거워질수록 정부.여당으로선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제는 심지어 "영.호남 중 한 곳에 (한전을) 보내면 다른 한 쪽의 내년 지방선거는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까지 나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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