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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앤킬 '스트라이크와의 싸움'

중앙일보

입력

한 때 메이저리그 최강의 마무리투수였던 마크 월러스는 100마일에 육박하는 위력적인 패스트볼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에서 쫓겨났다.

최고좌완투수의 계보를 이을 것으로 평가받는 릭 앤킬(21·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도 어쩌면 월러스의 길을 걷게 될지 모르겠다.

23일(한국시간) 플로리다에서 벌어진 몬트리올 엑스포스와의 경기에 선발등판한 앤킬은 첫 세 명의 타자를 내리 볼넷으로 내보내고, 다음 타자 블라디미르 게레로에게 만루홈런을 맞는 등, 최악의 부진으로 토니 라루사 감독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앤킬은 3회까지 나머지 이닝을 잘 막아냈지만, 이는 19일에 있었던 두번째 등판에서 여섯 명의 타자를 줄줄이 볼넷으로 걸어나가게 했던 부진의 연속선상에 있는 거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데뷔 초기까지만 해도 앤킬의 볼넷 남발은 릴리스 포인트의 흔들림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릴리스 포인트는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전반기 5.32였던 9이닝당 볼넷 허용율은 후반기에는 3.87개로 떨어졌다.

애틀란타와의 디비전 시리즈 1차전. 악몽의 날이 찾아왔다.

부시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관중들, '살아있는 역사' 그렉 매덕스와의 맞대결.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던 앤킬은 3회초 무려 3개의 볼넷과 5개의 폭투를 남발하며, 메이저리그 역사상 1이닝 5개의 폭투를 기록한 두번째 투수가 됐다. 그리고 이때부터 앤킬의 제구력은 기술적인 문제를 떠나 정신적인 문제가 됐다.

앤킬의 폭투행진은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이어졌지만, 라루사 감독은 그를 계속 중용했다. 당장의 우승을 위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았던 것이다.

스토브리그 동안 앤킬에 대한 라루사 감독의 배려는 대단했다. 매니 라미레스(보스턴 레드삭스 외야수)의 '펜스 공포증'과 박찬호의 '실투 악령'을 고쳐준 심리학자 하비 도프먼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면서,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특별 훈련을 진행했다.

지난 14일(한국시간)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 앤킬은 2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29개의 투구 중 22개가 스트라이크였으며 단 하나의 볼넷과 폭투도 범하지 않았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두 번의 실패로 인해 앤킬은 다시 지난해 10월로 돌아갔다.

'제2의 샌디 쿠펙스'가 될지도 모른다는 스물한살의 앤킬. 월러스의 동반자가 되기엔 그의 나이와 장래성이 너무도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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