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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스테이지] 무용수 몸 풀어주는 '마법의 손'

중앙일보

입력

화려한 무대 뒤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스탭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조명과 무대미술.장치.의상에서 분장과 소품에 이르기까지. '뒷광대' 라고 불리는 숨은 주역들이다.

전면에 나서지 않지만 이들이 없으면 '쇼' 는 불가능하다. 음악과 연극.무용.영화.방송.가요 등 문화 각 분야에서 활약 중인 '무대 뒤 주인공' 들을 소개한다.

무용 마사지트레이너 권형수씨(36) . 그의 직업은 무대에서 춤추는 무용수들의 뭉친 몸 근육을 풀어주고 부상예방을 위한 교정마사지를 하는 일이다. 발레와 고전무용 등 무용단들의 큰 공연이 있을때면 연습실이나 무대뒤에서 무용수들의 몸을 돌본다. 불편한 곳이 있으면 압박테이프로 고정시키고, 공연 중에 발생하는 가벼운 부상에는 응급처치까지 해야하는 팀닥터다.

"공연 내내 발끝으로 체중을 지탱하며 몸 전체 근육을 곧게 뻗어야 하는 발레는 그 어떤 운동보다 하체에 부담이 많이 가는 종목입니다.

대부분의 무용수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신체에 변형이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특히 아킬레스건이 늘어나면 무릎이나 발목.고관절의 고장이 잦기 때문에 발목 부위는 그때그때 근육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대학때까지 태권도선수로 활동한 권씨는 제대후 스포츠 마사지트레이너로 진로를 바꿨다. 태권도와 쇼트트랙.피겨스케이팅 등 운동선수들을 관리하다 모교인 세종대 무용과.리듬체조팀과 일한 것이 계기가 돼 무용계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마사지트레이너 경력은 올해로 10년째. " '무용마사지(무용요법) ' 라는 개념조차 도입되지 않은 국내에서 '웬 젊은 남자가 여자무용수들 몸을 주무르냐' 는 주변의 묘한 시선도 있지만 누구보다 무용수들이 무용마사지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는게 권씨의 설명이다.

그가 함께 일한 무용단은 국립발레단.국립무용단.유니버설발레단.서울발레시어터.컨템포러리 현대무용단.광주시립무용단 등. 주요단체의 거의 모든 무용수들이 권씨의 마사지를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한하는 외국 유명무용단도 권씨의 몫이다. 애틀랜타발레단과 조프리발레단, 네덜란드댄스시어터의 내한공연 때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국내 무용마사지의 역사는 짧지만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 이라고 권씨는 자신하고 있다.

개성이 강한 무용수들과 일을 하다보니 에피소드도 많을 터. "한번은 외국 발레단의 여자 수석 무용수를 마사지하게 됐는데, 글쎄 벌거벗은 몸으로 침대에 눕더라구요. 순간 너무 당황했지만 조금 마사지를 한 뒤에 '이제부턴 속옷은 입으셔도 됩니다' 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옷을 입더라구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 나라에서는 그렇게 마사지를 받았더군요"

그동안 만난 무용수들 중에 무용수로서 가장 완벽한 몸매를 갖춘 사람은 누구인지, 객관적인 신체조건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노력으로 극복하고 성공한 무용수 등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는지 넌지시 묻자 "나는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이지, 무용수들을 평가하는 사람은 아니다" 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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