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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삼성의 엄살과 질투 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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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철호
논설위원

지난 4월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현 미래전략실장)는 1분기 영업이익이 5조8000억원을 넘자 “스스로 놀랐고, 두려움이 밀려왔다”고 고백했다. 놀란 까닭은 가공할 이익을 낸 스마트폰의 위력이다. 전성기 때 반도체를 뛰어넘었다. 두려웠던 이유는, 우리 사회의 시샘 어린 눈초리였다. 다행히 공포는 하루 만에 기우로 끝났다. 애플이 3배가 넘는 17조5500억원의 영업이익을 공개하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주 공개된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은 더 놀랍다. 영업이익이 6조7000억원이나 된다. 삼성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예방주사부터 놓았다. “그룹 전체 이익의 7할을 전자가, 전자 이익의 7할을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구조는 부담이고 숙제다.”

 하지만 삼성의 반응은 엄살로 보인다. 스마트폰 편식이 두통거리라면, 애플은 아예 중환자실에 드러누워야 할 판이다. 애플은 아이폰·아이패드·아이팟에만 목을 매는 신세다. 또한 휴대전화는 이미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아 반도체·LCD보다 경기변동에 덜 민감하다. 통신사 보조금 덕분에 위험도 분산된다. 증권가에서 삼성전자 3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를 8조원 수준으로 올려 잡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폰5가 나오더라도 반도체 수출이 급증하리라는, 밝은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삼성이 지레 고개를 숙이는 것은 ‘질투의 경제학’을 의식한 보호본능으로 보인다. 실제로 2분기 실적이 나온 직후 경제평론가 S씨가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70%는 내수에서 발생한다”고 비난했다. 한마디로 명백한 오류다. 해외에서 번 수익을 국내로 들여온 것을 놓고, 엉뚱하게 “국민을 상대로 이익을 챙긴다”고 공격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국내에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착한 일을 하고도 욕을 먹었다. 나중에 S씨는 실수를 인정하고 “미안하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에 “삼성은 우리의 등골 브레이커”라며 난리가 난 뒤였다.

 참고로, 애플도 지난 4월 절세(節稅) 꼼수가 드러났다. 이익의 70%를 조세피난처 등 외국에 묻어두고, 미국 내 이익도 법인세가 적은 주(州)로 옮긴 것이다. 애플은 지난해 39조원의 이익을 거두고도 약 3조7000억원의 세금만 냈다. 반면 그 절반도 안 되는 16조원 이익의 삼성전자는 3조원의 세금을 냈다. 애플은 “탈세의 개척자”라는 비난에 “세율이 높아 해외서 번 돈을 못 가지고 들어온다”며 시치미를 뗐다. 삼성이 바보일까, 아니면 애플이 영악한 걸까.

 최근 애플이 폭스콘 사태, 일자리 논란에 휘말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애플은 중국 등에 7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국내 고용은 4만7000명에 불과하고, 그중 대부분이 연봉 3000만원 밑의 소매점 직원이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애플은 물러서지 않았다. “실업률과 일자리는 정책 문제인데, 왜 우리에게 뒤집어씌우느냐”고 맞섰다. 홈페이지엔 이런 글까지 버젓이 올렸다. “…우리 제품을 배달하는 운전사, 그리고 운반 트럭을 제조한 간접인력까지 포함하면 미국에서 51만4000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애플이 한국 기업이었다면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얻어맞았을 것이다.

 사실 삼성전자의 독주(獨走)를 지켜보는 마음은 불편하다. 스마트폰 초호황에 따른 착시현상도 경계 대상이다. 이대로 가면 사회 양극화에 따른 경제 민주화 요구는 더 거세지고, 삼성의 엄살도 더 심해질 것이다. 요즘 핀란드를 예로 들며 “노키아가 무너지자 로비오(앵그리 버드 제작사) 같은 벤처들이 쏟아진다”며 ‘대기업 해체’를 외치는 인사도 눈에 띈다. 한마디로 틀린 이야기다. 지난 3년간 핀란드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2%로, 이웃인 스웨덴·노르웨이에 뒤처졌다. 노키아가 잘나갔다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우리 정치권의 경제 민주화도 구체적인 사실 위에서 진행돼야 한다. 진영논리와 편가르기에 치우치면 동반성장이 아니라 동반침몰로 이어질 게 분명하다. 혹시 애플은 마구 존경하고 삼성전자는 무조건 비난하는 배경에, 우리 속의 ‘식민지 노예근성’이 없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기업이 더 많은 돈을 버는 걸 겁내는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 병든 나라다.